[가을 식탁 위한 특별한 쇼핑] 이천·여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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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이천시 사기막골 도예촌의 한 도예전시장에서 쇼핑객들이 다기 제품을 고르고 있다. 이천=정현목 기자

맨 마지막의 사치가 '그릇 사치'라는 말이 있다. 상차림을 보면 그 집 가풍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제대로 그릇을 골라 절도있게 밥상을 차리는 일, 창의적으로 식탁을 꾸미는 일이야말로 녹녹잖은 '내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양은.스테인리스.플라스틱.서양식기 등을 거쳐 최근엔 사발.전승 자기 등 한국의 도자 식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싸고 다양한 도자식기를 구하려면 나들이를 겸해 여주.이천 등지의 요장에 들러보는 게 좋다. 이번 주엔 도자 식기와 관련된 행사가 두 곳에서 열린다. 14일 서울무역전시장의 '토야테이블웨어 페스티벌', 17일 이천에서 열리는 '이천 도자기 축제'가 그것이다. 행사에 앞서 요장이 모인 이천과 여주를 다녀왔다.

*** 이천

"요즘은 결혼을 앞둔 젊은 사람들이나 신혼부부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문양이나 디자인을 가지고 찾아와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천 사기막골 도예촌에서 3대째 '송월요'를 잇고 있는 김성태 사장은 최근엔 이런 주문형 제작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제작에는 20일이 걸린다. 그릇에 좋아하는 문양이나 가훈.기념일.이름 등 뭐든지 새겨넣을 수 있다. 이제 그는 작품에만 매달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이런 문화적 감각을 가진 젊은이들 때문에 좀 희망이 보인다"며 "도자식기의 생활화를 위해 뭐든지 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좌회전하면 신둔면 도예촌이 나오고, 우회전을 하면 사기막골 도예촌이 나온다. 이 두 개의 도예촌은 1960~70년대까지 일본에 한국 도자기 열풍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도자기 산지였다. 80년대 초 일본 매기가 꺾이면서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 전승도자기의 대표 산지로 꼽힌다.

그 사이 곡절도 겪었다. 작품성이 강했던 도자기에서 이젠 생활자기들을 만들어낸다. 80년대 초 이천의 최대 요장인 광주요가 '생활자기'를 선언한 이후 350여개 이 지역 요장들이 조금씩 노선을 바꾼 것이다. 지금은 7대 3 정도로 생활자기가 앞선다. 물론 작품에 대한 향수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올 봄 생활자기 위주로 매장 구성을 바꿨다는 '도예 종합전시관'의 성정훈 사장은 "생활자기를 만들고 있지만 이천 도자기답게 작품성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향수 때문인지 이천 생활자기는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이천의 도자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500원짜리 자기 티스푼도 있고, 2000원짜리 컵도 있는가 하면 2만~3만원대의 컵도 있다. 다기세트도 2만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6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재료와 공법에 따라 다 틀리다. 그래도 한 자리에서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여주

여주는 이천과 달리 애당초 실용적인 생활자기에 일찍 눈뜬 곳이다. 이곳 도자기 업체 관계자는 "이천이 조금씩 만들어내는 가마라면, 여주는 틀에 맞춰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장"이라고 말했다.

여주의 요장은 북내면 천송.오학.현암.오금리 등에 400여개가 모여 있다. 여주대교에서 대신면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와 원주방향의 42번 국도 주변에 전시판매장이 많아 드라이브 삼아 쇼핑을 하기엔 그만이다.

여주의 생활자기는 이천보다 가격이 좀 싸다. 밥공기 하나에 1000~2000원짜리도 수두룩하다. 대량생산제품.반(半)수작업 제품.수작업 제품 등 선택의 폭도 넓다. 반수작업 제품은 틀에 넣어 만들지만, 약간의 수작업을 거쳐 손 터치 느낌을 준 것이다.

민속도자기조합 전시장 관계자는 "신혼살림에 필요한 식기세트를 20만~30만원대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여주의 히트상품으로는 쌀독이 꼽힌다. 황토.옹기 등으로 만든 쌀독은 쌀벌레가 덜 생기고, 디자인도 좋아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거성도예전시장의 김순균 사장은 "작품 같은 느낌의 쌀독과 화분들이 요즘 인테리어 소품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쌀독은 20㎏.40㎏ 두 종류가 있으며, 가격은 3만5000원~7만원대다. 음이온을 배출해 음식물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기능성 쌀독은 30% 정도 더 비싸다. 여하튼 쌀독을 사러 여주에 왔다가 다른 생활자기를 덤으로 사가는 사람들이 많아 이곳 상인들은 쌀독을 '여주의 효자'라고 부른다.

원형 식기에 물린 주부라면 여주의 식당용기 전문업체를 들러보는 것도 좋다. 은행잎.육각형.삼각형.물방울 모양.배 모양 등 독특한 스타일의 접시가 눈길을 끈다. 한식.일식집이 주고객이지만, 최근에는 요리와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주부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선욱도자기의 이현숙 사장은 "식기 모양과 색깔에도 신경 쓰는 전문가들이 식당 주인"이라고 말했다.

이천.여주=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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