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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식수로 기생충 기승 … 아프리카 가나 마을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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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프리카 가나의 클라치웨스트 테레소 마을 주민 400여 명이 11일(현지시간) 한자리에 모였다. 족장들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전통의상 차림으로 정중히 악수를 청했고, 아낙네들과 코흘리개 꼬마들은 환영의 춤을 췄다. 마을에 우물을 뚫어준 한국인들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클라치웨스트 지역은 가나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불린다. 3면이 호수로 둘러싸여 있어 하루 몇 차례를 오가는 판툰(페리)이 끊기면 사람·물자 왕래가 힘들다. 이 때문에 상수도 등 사회 기반 시설이 열악하다. 웅덩이·개울물을 식수로 쓰는 경우가 많아 수인성 질병이 많이 발생한다. 특히 다른 나라에선 이미 자취를 감춘 기생충 ‘기니아 웜’으로 인한 질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따라서 오염되지 않은 물을 얻을 수 있는 우물이 생기면 위생 상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대부분인 이 지역 사람들로서는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 가나 클라치웨스트 지역 테레소 마을의 한 주민이 11일(현지시간)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 한국지부가 만들어 준 우물에서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기니아 웜’ 등 수인성 질병이 창궐했던 이 마을은 우물 덕에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클라치웨스트 지역의 깨끗한 식수 보급률은 40%에 불과하다. [클라치웨스트=김한별 기자]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 한국지부는 테레소를 포함해 클라치웨스트 남부의 마을 13곳에 우물을 파줬다. 스페인·독일 지부가 포기한 사업을 넘겨받은 지 불과 1년 만에 공사를 끝냈다. 우물 한 곳당 1000만원가량 드는 비용은 인쇄회사를 운영하는 안태복(58) 대표 등 한국의 후원자들이 부담했다. 특히 안 대표는 딸의 결혼식 축의금 5210만원 전액을 기증해(본지 2월 13일자 26면) 마을 다섯 곳에 우물을 선물했다.

우물이 생긴 뒤 13개 마을 1만4000여 주민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드 오스라마 마을의 원로인 아쿠시 페닌(85)은 옷자락을 걷어 흉터투성이 다리를 보여주며 “옛날엔 마을 전체가 기니아 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 앞에 우물이 생긴 덕에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달라진 건 위생 상태뿐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물 긷는 일은 전통적으로 아이와 여성들 몫이다. 매일 아침 황톳길 4~5㎞를 왕복해야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다. 농번기엔 아예 결석을 했다. 여성들은 외진 곳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가나 우물 사업을 총괄한 월드비전 차승만(36) 주임은 “우물이 생기면서 이런 걱정이 사라져 여성들, 특히 학부모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새 우물이 생긴 테레소 마을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안카세 마을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알리 히아 디알란(도와주세요).” 옆 마을에 우물을 파준 한국인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주민들은 “우리 마을에도 우물을 파달라”며 매달렸다. 어른들의 옷은 때로 얼룩져 있고 아이들 머리엔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우물이 만들어진 마을들을 둘러보기 위해 클라치웨스트를 찾은 안 대표는 안카세 마을 주민들의 간절한 호소에 즉석에서 “귀국하면 추가 지원금을 마련해 우물을 파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을 주민들은 감사의 표시로 “안 대표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을 안-안카세로 개명하겠다”고 화답했다.

무세스 푸냐(52) 클라치웨스트 군수는 “한 번 도움을 받으면 평생 기억하는 게 아프리카의 문화”라며 “이 지역 사람들은 자자손손 한국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냐 군수는 이날 한국에서 찾아온 후원자들을 만나기 위해 존 아타 밀스 가나 대통령이 주재하는 전국 군수회의에도 불참했다. 대신 “대통령에게 한국의 지원 내역을 상세히 보고했다”며 한국의 추가 지원을 부탁했다. 월드비전 후원 전화 02-784-2004.

클라치웨스트(가나)=김한별 기자

◆기니아 웜=기원전 2세기에 등장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기생충’ 중 하나다. 민물에 사는 물벼룩에 기생하며 사람 몸속에 들어가면 최대 1m까지 자라 종아리·발목 등의 피부를 뚫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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