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찢는 아픔으로 재고 타이어를 찢어라.’
이에 김 사장은 단호하게 ‘노’라고 답했다. 그는 “재고를 유통시켜 고객들에게 품질이 나쁘다는 평가를 받으면 지금까지 지켜온 ‘금호’ 브랜드를 통째로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적자를 줄이려고 브랜드를 망치는 짓을 하면 재기가 불가능하다”며 전량 폐기를 지시했다. 그 대신 김 사장은 조건을 달았다. 임원과 팀장급 전원이 전국 유통망에 숨겨진 재고를 찾아내 직접 찢어 폐타이어로 처리하라는 엄명이었다. 멀쩡한 타이어를 직접 찢으면서 ‘과잉 생산’과 ‘밀어내기 판매’의 후유증을 느껴 보라는 것이다.
금호타이어 임원들이 최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2년 이상 된 재고 타이어를 찢고 있다. 이 작업은 넉 달간 지속됐다. [금호타이어 제공]
금호타이어는 2002년부터 3년간 영업이익률이 10%를 넘는 등 그룹사 가운데 최고의 이익을 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과잉 생산에 따른 유통 재고가 골칫거리였다. 올해 3분기까지 영업적자가 1614억원이나 됐다. 올해 창업 50년 만에 첫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적자의 원인으로 ‘연구·생산·판매’의 3박자가 깨진 것을 찾아냈다. 연구소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품을 개발했고 생산은 시장의 변화와 관계없이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제품만 만들었다. 판매는 대리점에 밀어내기를 지속해 장부상 흑자지만 엄청난 재고를 숨겨 놓았다. 그는 즉각 3개 부문장을 경질했다. 이어 수년간 숨겨 놓은 유통 재고를 모두 장부에 반영해 털어낼 것을 지시했다. 적자가 뻔한 상태에서 지역 본부장들은 문책이 두려워 잇따라 축소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이한섭 운영본부장(전무)은 “직접 재고 타이어를 수거해 찢어 보면서 방만했던 생산과 판매를 반성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원칙론자로 유명하다. 올 4월 전국 영업지점장과 판촉을 위해 함께한 등산대회에서 일부 지점장들이 코스를 단축해 올라가 정상에서 기다렸다. 중간 기착점에서 이를 발견한 그는 “모두 함께 기착점에서 만나 정상에 간다는 원칙을 깬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한 발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이들을 원위치시킨 뒤 함께 정상을 밟았다.
김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