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5년간 헌신해온 연세대 재활의학과 문재호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근육병. 말 그대로 근육에 이상이 생겨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귀 질환이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완치도 힘들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선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꾸준한 재활치료로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멈출 수는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2008년 통계에서 1562명으로 집계돼 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근육병 권위자인 연세대 재활의학과 문재호(사진) 교수는 “근육병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언제든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근육병요양소’ 설립”이라고 말한다. 이 철학 때문에 그는 요양소 건립을 위해 25년을 일해왔다.

문 교수는 매년 요양소 건립 성금모금을 위한 자선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는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행사가 열렸다. 대통령 영부인인 김윤옥 여사를 비롯한 각계의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1000여 명이 참석했다. 문 교수는 “매년 행사에서 많은 분이 도움을 주었다”며 “요양소가 건립된다면 모두 도움을 주신 분들의 공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가 근육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미국 유학시절이다. 그는 뉴욕대에서 재활의학을 전공했다. 당시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은 한국과는 달랐다. 미국의 근육병 환자들은 전문 요양소에서 체계적인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당시 한국 병원은 이 희귀 질환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환자들은 속절없이 서서히 몸이 굳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문 교수는 근육병 연구와 요양소 건립을 평생의 목표로 삼게 됐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1983년 연세대에 문을 연 ‘근육병센터’가 시작이었다. 그 뒤 경제적으로 어려워 휠체어나 호흡기를 사지 못하는 환자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근육병재단’도 설립했다. 9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근육병 환자에게 근육 세포 이식수술을 했다. 근육의 마비를 막는 수술로 지금까지 국내외 환자 30명이 이 치료를 받았다. 한국 최고의 근육병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는 “요양소 건립이라는 목표를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라며 아쉬워한다.

문 교수가 계획하는 요양소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신체 재활’도 중요하지만 ‘직업 재활’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 때문에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박탈당한 환자들의 인생설계를 돕는 것이 진정한 ‘재활치료’라는 신념에서다. 그래서 문 교수가 돌보던 환자 중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꿈인 고3 남학생에게는 기타리스트 이병우씨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문 교수는 “꿈을 찾아주는 것은 재활의지를 강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모인 요양소 건립 자금은 15억. 목표액은 50억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문 교수는 “의사로서 당연히 근육병에 대한 치료 연구를 열심히 할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자선행사도 요양소가 건립되는 날까지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