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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YS를 주시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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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시 DJ가 한 수 위이다. 총선연대가 낙천운동에 나설 때 그는 6월항쟁까지 회상하면서 시민불복종운동의 손을 들어주었다.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점수를 따고 옷사건 이후로 불거진 민심이반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낙천운동은 '차기' 를 꿈꾸면서 임기 중반에 권력누수를 부추길지 모를 민주당내 중진을 길들이는 성과까지 있었다.

그러나 DJ는 정작 공천을 결정할 때는 철저히 '현실' 을 선택했다. 총선연대가 퇴출명단에 올려놓은 중진은 이미 독자노선을 걸을 수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지만 공천에서 탈락하면 무소속 출마를 불사할 '자존심' 이 있고 선거에 나서면 민주당 후보를 낙선시킬 '힘' 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탈락한 중진이 서로 연대전선까지 구축하고 폭로전에 나서면 사회 일각에 깔린 반(反)DJ 정서에 불이 붙을 수 있었다. DJ는 바로 그 위험성을 알고 '일보 후퇴 이보 전진' 의 현실적 전략을 구사한 것이었다.

이종찬(李鍾贊) 전 국정원장이 종로 수성(守城)에 성공했고 정대철(鄭大哲) 전 의원이 중구 지구당을 따냈다. 한편 민주당 내에 자기 계보를 가진 김상현(金相賢) 의원만 팽(烹)당하였다.

'개혁' 이라는 총론에 반대할 이는 없다. 그러나 막상 각론에 들어가 '살생부' 를 논하기 시작하면 사회적 공감대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탈락자를 놓고 "너무하다" 는 동정론이 이는가 하면 "미운 털이 박힌 탓이다" 는 보복론이 고개를 든다.

게다가 심판하는 자가 심판받는 자보다 더 낫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는 양비론까지 가세하면 공천에서 탈락한 중진은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그러한 위험성 앞에서 DJ와 다른 선택을 내렸다. 자민련이 총선연대를 '홍위병' 으로 몰아세울 때 한나라당 역시 그 배후에 민주당이 숨어 있다는 '권력연계설(權力連繫說)' 로 맞장구 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결정의 순간에서는 '2.18 대학살' 을 선택했다. 평생 경남에서 '차기' 를 준비해온 이기택(李基澤) 고문을 낙마시켰고 대구.경북의 후광 아래 '킹메이커' 로 군림해온 김윤환(金潤煥) 의원을 버렸다.

부산 출신으로서 민주계 7선의원인 신상우(辛相佑) 국회부의장 역시 낙천의 고배를 마셨다. 당권파 말을 그대로 빌린다면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칭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오히려 영남권 중진만을 표적으로 삼아 세대교체에 나선다는 지역감정 역풍(逆風)이 불 조짐이다.

게다가 밀실공천으로 한나라당을 사당화(私黨化)한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그러한 여론을 지렛대로 삼아 공천에서 탈락한 중진은 재기를 서두르고 신당 창당까지 준비하고 있다.

결국 이회창 총재는 내버려두면 국민이 표로 심판할 '중진' 과 '차세대 주자' 에게 오히려 자신을 뒤흔들 빌미를 제공하고 영남당 창당을 부지불식간에 지원하고 말았다.

그런데 당권파(黨權派)는 민심을 추스르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수만 놓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공천권은 총재에게 있다" 는 말로 탈락자에 맞선다.

그 측근은 "사분오열하는 1백30석보다 일치단결하는 90석이 정권을 만든다" 는 말로 공천결과를 정당화한다.

당권파의 판단능력을 의심케 하는 말이다. 총선은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지 대선 전초전은 아니다. 하물며 한나라당이 총선연대처럼 명분만을 좇을 수는 없다.

반대 계파마저 달래고 아우를 수 없는 정당에게서 수많은 사회계층을 하나의 연대 틀 안으로 끌어들여 갈등을 녹이는 수권정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회창 총재가 키를 틀고 상황을 추스르기에는 이미 늦었다. 야당이 깨지느냐 마느냐는 이제 YS가 결정한다.

그가 이회창 총재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영남당 창당만은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YS가 여론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말 것이다.

김병국 <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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