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낙천체험] 유시춘 국민정치硏 정책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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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천 후유증이 크다. 낙천자들은 끓고 있고 '낙천체험' 도 갖가지다. 단지 사적 체험으로만 파묻지 않기 위해 여.야 두 경우의 '낙천체험' 을 소개한다.

나는 이른바 TK 출신으로서 전두환 정권에 맞서 인권운동을 했다. 민가협 창립총무를 맡은 직후 10여년 재직했던 고등학교 교사에서 해직됐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유치원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또한 괜찮다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등단해 여러 권의 소설책을 낸 여성작가이기도 하다. 때로는 몸으로, 때로는 펜으로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사심없이 헌신해왔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은 이런 경력을 귀하게 여겼던지 민주당은 나를 1차 신당창당추진위원으로 영입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통민주세력임을 의심치 않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영입 당시에는 지역구 공천신청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여성영입인사 중에도 용기를 내는 이가 없었다.

때마침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 친여성적인 대통령이 여성도 지역구에서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격려했기에 고심 끝에 나는 용기를 냈다.

내가 사는 신도시라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고학력 젊은 주부들이 많고 지난 지방자치 선거에서 유능한 여성후보가 압승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답게 구태를 벗어나 유권자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몇가지 새로운 선거운동방안을 기획한 후 마침 선거구가 분구돼 현역의원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지역을 선택했다.

나는 새로운 정당문화를 키우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월 당비 5천원을 내는 여성당원 5백명부터 시작할 작정이었다.

공천 신청 후 나는 신도시에 걸맞은 새 선거문화에 대해 골몰했을 뿐 공천을 받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추진위원으로 영입된 여성으로는 유일했고 신문지상에도 줄곧 거명됐기 때문이다.

동교동 실세 누구 누구를 찾아가 문안인사를 드리고 또 심사위원 아무개를 새벽에 어디로 찾아가야 한다는 말 따위는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자신에 차 있었다. 신당이 창당 과정 내내 '젊은 피' 와 '개혁적 국민정당' 을 외쳤고 나는 그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개혁성.참신성.도덕성.당선 가능성 등의 공천심사 기준으로 볼 때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뜻밖에 낙천됐다. 그 사유를 알지 못하지만 구차스럽게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고향에서의 온갖 배척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관되게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대선 때마다 김대중 후보 찬조연설을 했던 사람으로서 한마디 충언을 하고자 한다.

이번 공천이 과학적 분석에 의한 투명하고 공정한 것이었다는 지도부의 말은 거짓말이다. 공천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동교동 이너서클은 정치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을 외면했다.

내가 지난 19일 당무위원직을 사임하고 탈당한 것은 이번 공천 과정에 달리 항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당이 명실상부한 '개혁적 국민정당' 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무소속 출마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

유시춘(전 민주당 당무위원.작가.국민정치연구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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