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세월에 묻은 광주의 분노- 송기숙 '오월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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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광주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 섰던 소설가 송기숙(65.전남대 교수)씨가 20년만에 광주이야기를 써냈다. 신작장편 '오월의 미소' (창작과비평사.8천원)는 살벌했던 광주가 오랜 세월을 지나 오늘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들려준다.

"1980년 광주항쟁을 직접 경험했기에 지금까지 광주 얘기를 쓸 수가 없었어요. 너무나 현장에 가까이 있었고, 너무나 강렬한 분노를 품었기에 '문학' 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분노를 삭히는데 20년 걸렸네요. "

송씨는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민대표, 수습위원으로 나섰다가 '배후선동' 으로 몰려 헌병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참상을 직접 수습하고, 그 일로 인해 다시 참화를 겪었기에 그가 품은 분노는 남들보다 갑절은 더했을 것이다.

그가 이런 분노를 삭이며 시작한 일은 '한국현대사 사료연구소' 를 만들어 역사적 현장과 사실을 정확히 발굴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89년부터는 소설가로 돌아와 자신의 분노와 민중의 함성을 1백년전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으로 옮겨 '녹두장군' 이란 12권짜리 대하소설을 썼다.

광주얘기를 소설로 쓰게 된 계기는 97년 대통령선거 당시 대선후보들이 한결같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사면하겠다' 고 공약하는 것을 보며 치솟은 울분이었다.

"늘 광주항쟁이라는 족쇄에 묶여있는 듯한 심정이어서 소설을 한번 써야지만 풀려날 것 같았지요. " 그는 소설을 쓰기로 작정하고 우선 집을 광주에서 화순의 조용한 시골로 옮겼다.

조용한 밤에 혼자 앉아야 머리가 가다듬어지는 버릇에 맞는 환경을 갖춘 다음 차분히 20년 세월을 정리했다.

"연구소를 하면서 7백여명 희생자들에 관한 자료를 정리했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어머니들이었습니다. 광주의 어머니들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더라구요. 그런데 어머니들은 모두를 품고 용서하는 분들입니다. 또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수부대원 중에 당시의 가책으로 알콜중독자가 된 사람입니다. 결국 이들도 정신적 희생자가 아니겠어요. 발포를 명령한 최고지휘자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희생자인 셈이죠. "

송씨는 이런 생각에 따라 광주의 최대희생자인 한 여자와 가해자인 공수부대 장교출신 남자를 중심으로 소설을 풀어갔다.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간 두 사람이 죽은 후 저승혼사굿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는 것으로 끝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책에 관심을 얼마나 가질지 모르겠어. 다 지났다고 잊어서는 안될 일인데…. " ' 올해 대학을 정년퇴임하는 노교수는 아무래도 요즘 젊은이들의 가벼움에 불안해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는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조용한 시골에서 무거운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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