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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⑮서울아산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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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이병섭 교수가 인큐베이터 치료가 끝나 병실로 올라갈 신생아를 검진하고 있다.

조용하다. 조명도 어둡다. 커다란 원룸 같은 병실을 둘러보면 기계음을 내면서 작동하는 의료장비와 현란한 모니터링 화면이 수없이 눈에 띈다. 과연 누가 이 많은 기계를 부착하고 있을까? 장비와 연결된 라인을 조심스레 따라가다 보면 인큐베이터가 있고 그 안에 ‘너무 작은’ 아기의 모습이 보인다. 자궁에서 미리 나오긴 했지만 때가 될 때까진 최대한 자궁과 유사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그래서 미숙아 집중치료실엔 습기차고 따뜻한 인큐베이터와, 조용하고 어두운 조명시설을 갖춘 병실이 필요하다. 이번 주 중앙일보는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을 다녀왔다.

#고혈압 산모가 조산을 하다

9일 오후 4시. 산부인과에서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연락이 왔다. 이제 막 임신 30주를 하루 넘긴 산모가 임신성 고혈압 상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곧 출산할 예정이란다. 임신 중 고혈압이 생기면 태반으로 가는 혈류가 감소해 태아는 저산소증에 빠지기 쉽다. 이제 막 출산할 임산부는 이완기 혈압이 110㎜Hg(정상 80㎜Hg 이하)를 넘어서면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산부인과에선 출산을 대비해 7일과 8일, 스테로이드를 주입했다. 태어날 미숙아의 폐 성숙을 돕고 뇌출혈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30분 뒤, 분만실에 가서 대기했던 박혜원 전임의와 함께 미숙아 진이(가명)가 인큐베이터 속에 담긴 채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들어섰다. 최우선 과제는 미숙한 폐를 치료하는 일이다. 박 전임의는 “1100g의 아기가 숨쉬기 힘들어 해서 기관지에 2.5㎜의 튜브를 꽂아 산소를 공급하면서 왔다”고 들려준다. 분만 직후 위장의 분비물과 가스를 제거하기 위한 콧줄도 꽂았다.

공기 중 산소 분압은 20%다. 하지만 진이는 튜브로 60%의 산소를 공급받아야 정상 산소 포화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의료진은 우선 진이의 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대기해 놓았던 이동성 X선 장치로 급히 폐 사진을 찍는다. 사진상 폐는 하얗다. 미숙한 폐가 확장하지 못해 제대로 숨을 못 쉬는 상태인 것이다. 사진을 보자마자 신생아과 이병섭 교수는 “서팩턴트(표면 활성제) 110㎎을 주입하라”고 지시한다. 오후 5시10분, 흰색의 액체가 튜브를 통해 4분에 걸쳐 흘러들어갔다.

“서팩턴트 주입 후 10분이면 폐가 펴질 겁니다.”(이 교수)

#제 기능 못하던 폐가 펴지다

2. 30주 1일 만에 1100g으로 태어난 미숙아 진이의 출생 직후폐사진. 호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폐가 하얗다. 3. 서팩턴트 주입 후 환기가 되면서 공기가 들어차 폐가 검게 보인다. 4. 진이가 인큐베이터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신인섭 기자]

오후 5시30분, 60%이던 산소 분압을 조금씩 줄여 공기와 동일한 20%를 공급하는데도 진이의 호흡은 1분에 50회로 안정적이다.

의료진은 확인차 가슴 X선 사진을 한 번 더 찍어본다. 이번 사진에선 폐에 공기가 들어가 검은색으로 보인다. 서팩턴트가 약효를 발휘하면서 진이가 제대로 호흡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자 이 교수는 기관지 튜브를 뺀 뒤 코에 5㎝ 정도의 압력을 가하면서 자발호흡을 유도하는 ‘비강 내 양압환기 장치’를 부착한다.

호흡이 안정되자 배꼽 동맥과 정맥에도 관이 삽입된다. 이 교수는 “정맥을 통해선 영양이 공급되고, 동맥을 통해선 아기의 혈압·맥박 등 혈류 상태가 측정된다”고 삽입 이유를 설명한다.

“진이가 입으로 빠는 일은 언제부터 가능해지나요?”(기자)

“임신 33주 무렵에 가능한데다 미숙아는 자발호흡을 하는 듯하다가도 금방 무호흡 상태가 됩니다. 진이는 30주 하루 만에 태어났으니 앞으로 2~3주는 정맥을 통해 영양을 공급해 줘야 합니다.”(이 교수)

첫 24시간 동안 10%의 포도당 77㏄(㎏당 하루 70㏄)와 아미노산 2.2g(㎏당 하루 2g), 그리고 칼슘을 주입했다. 24시간이 지나면 지방도 주입될 것이다.

진이의 건너편엔 2주 전, 임신 23주6일 만에 태어나 이제 겨우 600g을 넘어선 아기가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 진이의 오른편엔 막 인큐베이터에서 나왔다는 1.85㎏ 아기의 몸집이 오히려 커다랗게 보였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미숙아 치료 어떻게 하나
‘폐 표면활성제’ 등장 이후 생존율 크게 높아져

‘임신 기간 23주, 체중 500g’.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미숙아의 생존 한계점이다. 이 시기가 지나야 폐와 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상 신생아는 40주의 임신 기간을 거쳐 평균 3.2㎏으로 태어난다. 미숙아는 사망률과 후유증 발생이 정상아의 20배 이상이다.

미숙아 생존의 가장 큰 걸림돌은 폐 미숙으로 인한 호흡 부전이다. 의학적으로 34주 이전엔 가스를 교환하는 폐포의 탄력이 떨어져 숨을 쉬어도 가스 교환이 잘 안 되면서 폐가 찌부러지는 무기(無氣)가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 미숙아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킨 약이 1990년대 초에 도입된 서팩턴트(표면활성제)다. 90년대 중반부터는 1분에 900회까지 진동할 수 있는 인공호흡기가 사용됐다. 폐 손상을 줄임으로써 생존율을 높였다.

또 빠는 힘이 약하고 장이 미숙한 미숙아에게 정맥을 통해 필요한 만큼의 영양을 공급하는 일도 수월해졌다.

생존율이 높아지자 뇌 손상과 망막 손상으로 시력 장애 같은 후유증이 걱정거리로 남았다. 다행히 현재 망막질환은 정기적인 망막 검사로 예방하고 있다.  

미숙아 퇴원 시기는 ▶혼자서 숨도 잘 쉬고 ▶우유도 잘 먹어 체중이 매일 10~30g씩 증가하며 ▶인큐베이터를 나와 실온에서도 체온을 잘 유지할 무렵이다. 이때쯤이면 체중은 1.8~2.1㎏으로 증가해 있다.  

국내 의료기술로 몸무게 1500g 미만으로 태어난 미숙아는 90~95%, 1000g 미만일 땐 85~88%가 생존한다. 심각한 뇌성마비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기는 10~15% 선이다.

국내 생존 미숙아 중 임신 주기가 가장 짧았던 신생아는 지난해 초 22주3일 만에 출생한 아영(여)이다.

서팩턴트는=폐포의 벽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숨을 내쉴 때 폐포의 쭈그러짐을 방지한다. 미숙아는 이 물질이 부족,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인위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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