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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뒤늦게 태어나, 역사에 돌 던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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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내게는 (경성역 그릴의) 이 서글픈 분위기가 길거리 티룸(다방)들의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 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 있는 경우도 많았다. 커피~. 좋다.”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가 1925년 완공된 서울역의 스케일과, 당시의 모던 음료 커피에 매료됐음을 보여준다. 일제가 심어준 근대의 유혹은 그만큼 강렬했다. 식민지 젊은이 일부는 모던 보이로 변신했다. 제 힘으로 이루지 못한 모던 문명이 가슴 아팠지만, 새로운 변화와 혜택을 즐긴 것도 사실이다. 그런 역설의 풍경은 일제시대 일상사·문화사 책에 두루 담겨있다.

2000년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김진송) 이후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박천홍)등 많은 책은 근대 보통사람의 일상을 조명한다. 그건 서구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일상사로 독일 나치시대를 연구했더니 전혀 다른 역사의 그림이 등장했다. 독재 권력에 전면 지지·협력이나 극단적 반대·저항을 했던 세력 대신에 소극적 저항에서 자발적 동의를 했던 다수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들은 유보적 동의 내지 무수한 복합적 선택을 한 게 특징이다. 때문에 정치사가 ‘흑과 백 역사’라면, 일상사는 ‘다양한 컬러의 역사’다.

비판적 역사인식에 물타기를 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되레 책임을 공유하자는 성숙한 태도다. 유대인 학살만 봐도 히틀러·괴벨스 등 소수 권력자만큼이나 대중 차원의 자발적 동의가 있었다는 논리다. 며칠 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지만, 예서 묻자. 혹시 우리는 손쉬운 ‘역사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일신의 영달을 추구했다”는 매국노 명단을 만들고 돌을 던지는 데 열중하는 건 아닐까? 그건 뒤늦게 태어난 행운으로 앞 세대를 재단하는 횡포일 수도 있다.

언론인 장지연과 정치인 박정희가 유독 논란이지만, 박정희의 경우 광복 직전 초급장교 생활을 1년여 했다. 그 이전 군관학교 지원 때 혈서를 썼다는 설이 등장했지만, 당시 20대 젊은이가 그런 선택을 할 개연성은 없지 않았다. 그게 당시 현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를 ‘식민화된 군인’으로 싸잡아 규정해야 할까? 외려 식민지 현실 속에서 근대성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통해 훗날의 그가 성장했다고 보는 게 올바른 시각이 아닐까? 역사의 아이러니가 분명하지만, 이제는 그런 역설을 받아들일 때도 됐다. 어쨌거나 인명사전 발간은 이걸 반추해볼 계기이자, 친일 과거사 청산의 한 전기다.

인명사전은 해방 뒤 유야무야 됐던 반민특위 이후 처음이고, 사전 편찬에 국고 8억 원이 지원됐기 때문에 일정한 역사성을 갖는다. 사전편찬을 한 이들도 민족적 열정에서 작업을 참여했을 것이고, 그런 열정은 이 사회의 소중한 밑천이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사전 발간 이후 과거사에 대한 분풀이가 증폭되느냐, 성찰의 계기로 작용하느냐가 핵심이다. 참고로 시인 이상은 총독부에서 근무했다. 내무국 건축기사였는데 ‘다행히도’ 37년 사망했다. 그가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친일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리라.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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