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순 오영란 떠납니다, 고마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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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여자 핸드볼 ‘철벽 수문장’ 오영란(37·벽산건설)이 코트를 떠난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팀의 골문을 든든히 지켰던 오영란은 최근 선수 생활을 접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완전히 핸드볼과 연을 끊는 건 아니다.

벽산건설 핸드볼팀 임영철 감독은 11일 “오영란이 다음 시즌부터는 벽산에서 코치로 활약한다. 선수 시절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영란이 은퇴경기조차 없이 갑작스럽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건 복중 태아 때문이다. 오영란의 남편인 강일구(33·인천도시개발공사)씨는 “아내가 임신 5주째로 내년 6월 말이 출산 예정이다. 딸 서희(6)에 이어 둘째를 보게 됐다”고 귀띔했다.

◆여자 핸드볼의 ‘거미손’=신갈고 졸업과 동시에 대표팀에 발탁된 오영란은 한 개도 힘들다는 올림픽 메달을 세 개(은메달 2개·동메달 1개)나 수집했다. 스물넷에 처음 출전한 올림픽(1996 애틀랜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오영란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오른쪽 작은 사진)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순발력과 유연성이 뛰어난 그는 올림픽 때마다 ‘선방 쇼’를 펼쳤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는 경기당 10개가 넘는 선방을 기록하고 골까지 기록하면서 한국의 본선행을 이끌기도 했다. 팬들은 그에게 ‘통곡의 벽’ ‘골 넣는 골키퍼’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최고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던 게 선수생활 중 남긴 유일한 아쉬움이다.

명성은 뒤늦게 얻었다. 실력은 뛰어났지만, 핸드볼 인기가 미미한 한국에서는 그가 이름을 떨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가 인기를 얻은 건 2007년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서다. 아테네 올림픽 당시 여자 핸드볼 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는 임오경(서울시청)·오성옥(오스트리아 히포방크) 등과 함께 대표적 ‘핸드볼 스타’로 등극했다.

◆핸드볼이 선물한 ‘가족’=18년간 청춘을 바친 핸드볼이 그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바로 남편이다. 그의 남편은 남자 핸드볼대표팀 수문장 강일구. 네 살 연하의 남편에 대해 오영란은 “핸드볼을 하면서 얻은 최대 수확이 남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무뚝뚝한 편인데, 남편은 유머 감각이 있어 잘 맞는 편”이라면서 “2003년 10월부터 6개월간 노르웨이 프로 팀에서 뛰었는데, 당시 통화를 너무 자주 하는 바람에 국제통화료가 많이 나와 결국 벌어온 돈은 100원 정도 뿐인 것 같다”며 웃었다. 강일구는 “아내가 시속 90㎞가 넘는 공을 온몸으로 막아낼 때마다 너무 안쓰러웠다. 이제는 공을 안 맞아도 되는 게 가장 기쁘다”며 즐거워했다.

오영란은 출산 후 벽산건설에서 코치 수업을 받는다. 핸드볼 실업팀에는 여성 감독이 임오경(서울시청)뿐이지만, 오영란은 차근차근 코치 수업을 받아 여성 감독의 계보를 잇겠다는 각오다.

온누리 기자

오영란 ▶ 1972년 9월 6일 ▶ 1m70cm, 72kg ▶경력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 2000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2004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2009 SK 핸드볼큰잔치 골키퍼 방어상, 베스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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