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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外資, 국내 편법조달' 어떻게 이뤄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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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회사원 郭모(33.서울 방배동)씨는 지난해 12월 T정보통신이 발행하는 해외CB(전환사채)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가까운 친구로부터 받았다. 3천만~4천만원 단위로 돈을 모아 해외CB가 발행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郭씨는 "편법이라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다반사라는 게 증권사 직원이었던 친구의 귀띔이었다" 고 전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해외증권이라고 발행되는 것 중 70% 이상은 국내에서 소화된다고 봐야할 것" 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지난해 해외증권을 발행해 외국자본을 유치했다고 발표한 금액 중 상당수는 국내에서 조달된 것으로 금융감독원은 보고 있다.

◇ 국내자금 이렇게 동원한다〓해외증권을 발행하는 기업은 우선 발행주간사를 선정한다. 주간사는 발행과 관련된 모든 업무와 인수자의 물색까지 책임지게 된다. 특히 주간사는 은행.투신.증권사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해외증권 인수자를 물색한다.

일단 인수자가 정해지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주간사는 국제채권결제기구인 유로클리어에 해외증권을 예탁하고, 인수자들은 유로클리어의 발행기업 계좌에 돈을 넣고 거래를 마무리 한다.중간에 해외기업(대부분 페이퍼 컴퍼니)을 끼워 해외증권을 인수토록 한 뒤 국내 매입자들이 이들로부터 사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해외증권을 인수한 일부 국내기관들은 이를 다시 일반투자자들에게 파는 일도 있다.

매달 2천만~3천만달러 규모의 해외CB를 발행하는 코스닥 시장 등록기업들은 발행 전에 주간사 혹은 발행기업이 개인투자자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채권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10여명 안팎의 소수로 구성되고 돈은 해외증권 권리를 넘겨받기 하루전쯤 입금하기도 한다.

◇ 왜 편법으로 발행하나〓가장 큰 이유는 국내자금으로 외자유치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기업들은 약속대로 외자유치를 해야 한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국가 신용등급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아직 한국기업이 발행한 해외증권이 외국투자가들에 의해 전량 소화되지는 못해 국내 기관투자가를 동원한다" 고 밝혔다.

인수기관들도 해외증권이 국내에서 발행되는 CB 등에 비해 조건이 좋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는 연 6~9%로 국내증권과 별차이가 없지만 주가변화에 따라 주식 전환가격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조건이 붙는다는 것이 큰 이점이다. 국내서 발행되는 CB는 일반공모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관들이 손에 쥐는 물량이 작다는 것도 물량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해외증권을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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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사를 맡는 기관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해외증권을 발행하면 발행사로부터 액면금액의 2% 정도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는다. 원화표시 국내증권 발행수수료가 0.3%인 점을 감안하면 6배 이상 남는 장사인 셈이다.

◇ 대책은 없나〓D증권 채권 담당자는 "국내.해외증권을 막론하고 모두 유가증권 발행 신고서를 내게 하되 발행은 자유롭게 하도록 해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당국에서는 해외증권 발행 인가지침(가칭)을 만들어 변칙적인 자금조달을 막는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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