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동아시아 첫 순방서 오바마가 해야 할 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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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동아시아 순방길에 오른다. 14, 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중·일 3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의 부상, 일본의 정권교체,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 지역 통합 논의 가속화 등 동아시아의 복합적 변화 속에 이루어지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과거 미 대통령들의 통상적 동아시아 순방과는 다른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아시아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미국의 구상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미국과 중국을 가리키는 ‘G2’가 국제정치 용어로 자리 잡을 만큼 미국에 중국은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 협력의 파트너로 변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중의 경제적 공생관계는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미·중은 글로벌 이슈에 대해 책임을 공유하는 전략적 동반자임을 확실히 함으로써 미·중 관계에 대한 일각의 불안이나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우선 역점을 둬야 한다.

미·중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에는 새로운 도전이다. 특히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의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을 계기로 미·일 관계는 불안한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내세우는 하토야마 총리는 “미·일 동맹이 일본 외교의 축이라는 기본 인식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대미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공동체에서 일본 외교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방적 대북 방위동맹에서 글로벌 이슈에 공동 대응하는 21세기형 미래동맹으로 성격을 전환한 한·미 동맹도 근본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2012년 예정대로 전시작전통제권이 반환되면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G2 시대에 한·미, 미·일 동맹의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밝혀야 한다. 아울러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그랜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역 통합 논의가 가속화할수록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통합의 주도권을 노리는 중국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로 동아시아공동체를 한정했으면 하는 입장이다. 동아시아공동체의 범위에 관한 하토야마 총리의 구상은 아직 불분명하다. 아시아·태평양공동체(APC)를 제창한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미국도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요 20개국(G20) 중 6개국을 차지하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힘은 지역 통합이 가속화할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21세기에도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로 남기를 원한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분명히 입장을 밝히고, 지역 통합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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