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1세기로 맞추자] 흔들리는 생명(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새 세기, 새 밀레니엄에는 새 과제가 던져진다. 중앙일보는 21세기의 기준(스탠더드)을 설정해 나가는 작업을 새 시대의 과제로 잡았다. 중앙일보가 새천년준비위원회.사이버 중앙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연중기획 '21세기로 맞추자' 첫회를 내보낸다.

거듭 밝히지만 이 기획은 우리 생활에 밀착된 문제들을 화두(話頭)로 독자 여러분과의 토론을 거쳐 미래지향적 가치 중심의 생활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작업이다. 매달 하나의 주제(1월의 주제는 '흔들리는 생명' )를 제시하고 매주 이야깃거리(이번주는 '엄마없는 출산' )가 나가는 이 토론장에 독자 여러분의 열띤 참여를 기대한다.

[찬성] '여성의 굴레'벗겨줘야

출산은 인류 역사 이래 상당한 기간을 자연분만에 의존해 왔다. 많은 산모들은 죽음을 무릅쓰면서 기껏해야 산파의 원시적인 도움을 받는 정도에서 이 고통을 이겨왔다.

의사들이 본격적으로 분만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르네상스시대 이후부터다. 위치가 잘못된 태아를 돌려서 꺼내는 기술이라든지 좁은 골반 내에 박혀있는 아기의 머리를 감자(forceps)로 잡아 꺼내는 기술 등이 개발돼 많은 산모들을 죽음과 고통에서 구출했다.

이후 현대 의학의 발달로 산모의 사망률은 0.5% 이하로 낮아졌을 뿐 아니라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시험관 아기까지 선사하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시험관 아기나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의 발달로 섹스 없이도 임신이 가능해졌다.

남편이 무정자증인 경우 타인의 정자를 받기도 하고 난소 기능이 마비된 부인을 위해 다른 여성의 난자를 받기도 한다. 이는 수혈이나 장기이식과 다를 바 없다.

배양접시 위에서 어느 정도 자란 수정란이 둥지를 틀 자궁을 빌려주어 임신과 출산을 대신해 주는 대리모도 등장했다.

급기야 1997년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양 돌리가 복제인간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전 세계를 흥분시키자 이러한 생명공학.유전공학의 급속한 발달이 전통적인 가치관에 혼란을 초래한다며 연구에 윤리적 제동이 걸렸다.

과연 도덕이나 가치관은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진리인가. 그렇지 않다. 도덕이나 가치관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통념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관 아기를 시술할 경우 엄밀히 따지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섹스 없는 잉태, 생명창조의 영역에 과학이 손을 댄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으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의 많은 부부들이 시험관 아기의 시술로 자녀를 얻고 있고 이를 도덕에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이를 시술하는 의사들은 기술자가 아닌 과학자며 양식을 가진 지식인이다. 그들의 윤리관을 믿어야 한다.

성서에 의하면 원죄의 대가로 남자는 땀흘려 일하는 노동을, 여자는 산고의 고통을 겪도록 돼 있다. 이 속에는 당시 가족제도와 역할분담에 대한 지침이 들어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미 땀흘려 일하는 노동은 상당부분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으며 산업시대 이후 노동력의 동원은 남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동의 땀을 나눠 흘리면서도 산고는 여전히 여성만이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이 역시 마취의 발달로 무통분만이 가능해짐으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오늘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대거 향상됐으며 여성들은 각자 타고난 재능과 교육으로 인해 우수한 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사회로 환원되려는 순간 여성들은 여지없이 하나의 벽에 부닥치게 된다.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제약은 그 의지와 무관하게 그녀를 주저앉히고 마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복지는 이 여성의 자궁을 관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모성에 대해 말해선 안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에 사유재산제도가 생긴 이래 우위를 점하던 남자들이 파놓은 함정이니까. 생명과학의 발전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한 언젠가는 임신과 출산에서 여성을 해방하면서도 종족보존이 가능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처럼 어제의 반역이 오늘의 진리가 되었던 역사적 예를 상기하자. 과학의 발전에서 유독 생식에 관해 규제하려는 것은 미래 과학의 발달을 저지하는 케케묵은 구시대의 고정관념일 따름이다.

홍순기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홍보이사.'인애산부인과 원장>

[반대] 태교까지 복제할수야…

얼마전 한 일본 과학자가 인간 정자와 원숭이 난자의 체외수정에 성공했다. 이 사실을 동료과학자에게 털어 놓았을 때, 그가 받은 첫 질문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가 아니라 "도대체 그 존재의 보호자는 누가 될 것인가" 라는 것이었다.

과학실험으로는 대단한 성공인지 모르나,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과학실험의 경우에는 도덕적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다. 과학자의 활동이 인간을 직접적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출산기술의 발전도 그중의 하나다. 시험관 아기와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기술은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고, 나아가 생명복제 또한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같은 기술이 여성을 출산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사회활동을 넓혀줄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러나 그것이 몰아올지도 모를 비극적 결과를 생각하면 이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복제기술이다. 동물복제의 경우, 동물에게는 인격을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필자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인간의 장기이식에 필요한 장기복제의 경우도 대체로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문제는 인간복제다. 생명복제 출산방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출산방식이라는 점만 아니라, 배우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의 삶의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하다.

인간복제가 대량으로 이뤄지게 됐을 때, 과연 우리 사회가 이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 것인지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인간복제가 문제라면 인공자궁 방식은 어떨까. 성행위 없이 남의 자궁을 빌리는 대리모는 계약이 늘 불확실하고 그 책임소재가 모호하기 때문에 분쟁 발생의 소지가 많다. 더욱이 그 분쟁의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태어난 아기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많은 도덕적 문제를 야기한다.

어른들 사이에서 이뤄진 계약의 피해가 축복받으며 태어나야 할 아기에게 송두리째 떨어지는 것이다. 불행히도 인공자궁 개발 또한 이런 상황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인공자궁이 여성의 자궁과 완벽하게 동일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우리가 알기로는 임신중 태교가 대단히 중요하고 산모와 태아의 교감은 향후 인격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만약 인공자궁에서 태교가 이뤄질 수 없다면 그것이 해결해주는 것은 물리적 차원에서의 삶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인간복제기술이 완벽하다는 보장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그 기술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그 기술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에 대해 과학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다. 또 그런 연구가 우리의 희망과 상관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학문의 자유가 그 결과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학문의 자유만큼이나 그 결과에 대한 철저한 도덕적.법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

과학자들은 인간탄생과 관련된 기술의 상업화가 가져다줄 막대한 이익에만 도취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그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분만의 고통을 줄이는 데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줄인다는 이유로 야기될 수 있는 기술의 인간지배, 상업화를 경고하자는 것이다.

김형철 <연세大 교수.철학>

[독자참여 이렇게]

'21세기로 맞추자' 는 독자 여러분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우선 사이버 중앙(http://www.joins.co.kr)의 홈페이지에 '21세기로 맞추자' 는 배너(깃발)로 가십시오. 독자가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웹사이트(code21.joins.co.kr)도 있습니다.

여기서 독자는 이번 주의 토론거리를 둘러싼 상반된 입장의 글을 읽고 여론조사 폴에 찬.반 입장을 밝힐 수 있습니다. 또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사람의 글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밀레니엄기획팀의 팩스(02-751-5228)와 전화(02-751-5224)도 항상 열려 있습니다. 독자 여론조사와 의견은 요약해 다음 주에 소개하고 경청할 주장도 지상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