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눠먹기식 개각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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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곧 출범할 '박태준(朴泰俊)내각' 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다. 새 내각은 4월 총선 관리를 담당할 내각으로 중립성.공평성이 어느 때보다 더욱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사실 우리는 1997년 대선 전 DJP 합의를 존중해 자민련 인사가 연속 후임 총리에 기용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를 자제해 왔다.

물론 1997년의 DJP 합의가 내각제 추진을 전제로 한 약속인 만큼 그 공약이 깨진 지금은 명분없는 권력 나눠먹기 내지 총선 승리만을 위한 전략적 제휴라는 비판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현실을 최대한 고려한다는 취지에서 이마저 유보코자 한다.

그럼에도 여권의 움직임들은 임박한 박태준 내각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과연 과거 어느 때보다 과열될 총선을 무사히 관리해 낼지, 총선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장기간 홍역을 치르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여태껏 국민적 지지율이 여의치 않은 자민련 총재로서 도농 복합선거구제니 하며 자민련의 득표 방안을 챙겨온 당사자가 어느날 총리가 됐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을 바르게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우선 걱정이다.

그래서 김종필(金鍾泌)총리가 9일 朴총재의 총리직 수락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자민련에서 朴총재를 총리로 모시고' 운운한 대목조차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가뜩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재원 마련 대책이 안된 여러 정책 공약을 하고 신당 창당을 '홍보' 하는 듯한 내용을 발표해 물의를 빚은 게 엊그제다.

그런데 총리까지 나서 특정 정당의 총선 승리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인다면 선거가 제대로 관리되고 뒤탈이 없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네들만의 총리' 또는 '한 통속' 시비가 나오지 않도록 중립과 공평성의 모범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박태준 내각은 큰 난관에 부닥칠 것이다.

곧 있을 개각에선 7~8명의 각료직 교체가 있을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朴총리내정자가 '지분을 고집하지 않겠다' 는 듯한 언급을 한 것은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총선 출마로 인한 자민련 인재 풀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오히려 총선 승리에 집착한다는 간접적 방증이 된다.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선거 중립과 경제발전을 감안한 참신한 인사의 기용이 개각의 1차적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각과 관련, 개혁 지향성.전문성.국민적 화합.생산적 복지 전문가 등에 맞는 인사를 기용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朴총재의 총리 내정에다 그간 여권이 보여온 행태 때문에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선거용 인사를 대거 등용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다.

새 천년을 여는 첫해의 새 내각이 불안과 걱정속에서 출발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朴총리내정자는 이런 비판적이고 우울한 관측들이 빗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국민이 수긍할 만한 인물이 충원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본인을 포함한 내각 구성원들이 공정한 선거관리를 하고, 선거로 인한 국정누수가 없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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