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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BOOK] 제록스가 버린 기술, 그 기술 살려 돈 번 이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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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4면

오픈 이노베이션
헨리 체스브로 지음
김기협 옮김, 340쪽
은행나무, 1만7000원

기업 부설 기술연구소는 찬밥 취급 받을 때가 많다. 위기가 닥치면 우선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곳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직후 상당수 연구소가 문을 닫거나 연구원들이 쫓겨났다. 회사 수익에 별로 기여하지 않으면서 돈만 많이 쓴다는 인식 탓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제록스의 사례는 이 같은 국내기업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회사가 수십 년째 사무용 복사기 분야의 선두주자로 군림하고 있는 건 기술 혁신 때문이다. 경영진들은 첨단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만이 초일류기업의 비결이라고 판단, 69년 설립한 팔로알토연구소(PARC)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연구소에서 개발된 많은 기술들이 주력제품인 복사기와 프린터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제품 혁신에 기여하지 못한 기술은 대부분 사장됐다. 그러자 연구원들은 이 기술을 들고 창업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3COM·오로라·시노팁스 같은 컴퓨터·통신 관련 회사가 새로 생겨나거나 급성장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연구소에 있는 게 아니다. 지은이는 경영진과 기술혁신에 대한 시스템이 오히려 문제라고 한다. “제록스의 혁신 과정은 잠재적인 새로운 사업을 위한 기술과 시장의 불확실성의 조합을 다루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은이를 이를 ‘닫힌 기술혁신’이라고 명명한다. 혁신에 대한 열린 마음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극복 방안은 당연히 ‘열린 기술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지금 사업에 활용할 수 없다고 해서 “창고에 방치할 게 아니라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그럼으로써 “매출 기회와 잠재적인 새로운 사업기반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연구소가 모든 기술혁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회사 바깥에 있는 유능한 인재와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연구가 아니라 사내외 연구를 연결시켜(connect) 시장화하는 개발이라는 지적이다. IBM·인텔·시스코 등 초일류기업들의 사례를 심층 분석한 후에 얻은 결과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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