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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P 일곱 사장 이야기 ④ 드리미 최애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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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희 사장은 뭇 남성 못지 않다. 오히려 남자보다 호탕하고 대범하다. 동업종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영회 기자]

천안 직산의 충남테크노파크(CTP)가 올해로 창립 10년을 맞았다. 그동안 CTP는 충남의 17개 대학이 참가해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많은 우량 기업을 키워냈다. 그 중 일곱 명을 뽑아 창업스토리를 담은 책을 펴냈다. 그들을 밀착 취재해 싣는다.

김정규 기자

“처음엔 백세주만 홀짝거리다 거래처 사장님한테 된통 혼났어요. 거래처와 코드를 맞추려면 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더라구요.” 30대 초반을 갓 넘기는 여성에게 ‘사장’이란 직함은 어깨를 짓누르는 바위 같았다. 그런 말을 듣기 싫어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술자리가 끝나자마자 쓰러지기를 밥 먹다시피 했다. 술자리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사람 다루는 일도 쉽지 않았고, ‘여자’란 이름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허다했다. 우는 날이 많았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 그녀가 남자 몇 몫을 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IT와 LCD장비제조업체, 두 사업체를 이끄는 대장이다. 지금은 한자리에서 소주 3병은 너끈히 해치우는 여장부가 됐다. ㈜드리미 최애희(38) 사장.

금지옥엽 셋째 딸의 방황

충북 옥천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 셋째 딸로 마냥 귀여움만 받을 것 같았지만 공부 잘하는 언니들 덕분에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오히려 집안의 골칫덩이로 여겨지면서 가출도 하고, 탈선도 일삼았다. 그랬던 그녀에게 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졌다. 방적공장에 가서 고생을 해보란 것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며칠 못 갈 것이라는 아버지에게 ‘성실함’으로 반항하려 한 것이다. 24시간 방적기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 16살에 생전 손에 물도 묻혀보지 않은 그녀가 감당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냥 빌어볼까’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녀가 기계작업을 하다 손가락을 꿰매는 사고를 당했다. 이 때 어머니가 한달음에 달려왔고,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아버지도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귀가를 눈감아 줬다. 3개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땀방울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방황에 종지부를 찍다

방적 공장 생활이란 좋은 경험을 한 뒤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도 잘 다니고 대학에도 입학했다. 1993년, 대전이 엑스포 준비로 한창일 때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던 그녀는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녀는 95년 SERI의 보조연구원으로 입사한다. SERI 센터장 이상산 박사는 정보통신업계의 최고 실력자였다. 사회초년생 최애희는 그를 ‘세상에 나가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인생스승으로 모셨다. 덜렁거리는 성격에 실수도 많았던 그녀는 업무 처리 방법과 직장 내 인간관계를 푸는 지혜를 배웠다.

꿈을 주는 회사를 만들겠다

“회사를 차려보는 건 어때?” 그녀의 업무 능력을 인정해준 충남테크노파크(CTP) 이황우 팀장이 제안했다. 뜻밖의 말이었다. 당시 그녀는 CTP 등 공공기관의 홈페이지 프로젝트 일을 하고 있었다. 회사와의 갈등으로 사표를 제출한 상태였지만, 책임감에 일을 끝까지 하고 있었다. 이 팀장의 제안에 고민스러웠다. “왜 못해?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할 수 있어”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의 멘토인 이상산 박사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뜻을 알렸다. 며칠 뒤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드리미’란 회사 이름도 선물로 받았다. 드림(dream)과 도우미를 합성한 단어다. ‘기업을 하면서 사람들이 꿈을 꾸게 도와주라’는 속뜻이 담겨 있다. 2004년 2월, 그녀는 자본금 1000만원을 갖고 CTP에 사무실을 냈다.

여자 사장의 고군분투기

여자 사장으로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구설수다. 남자 사장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말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루는 거래처 사장과 식사를 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드리미 최 사장이 남자를 홀린다던데…” 최 사장과 식사를 함께 하던 거래처 대표가 “자리를 옮길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강철심장’을 갖고 있었다. 오히려 너털웃음을 지으며 상대방을 안심시켰다. “여자 사장으로 남자를 대하기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소문 때문에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나를 거쳐 갔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농도 짙은(?) 농담으로 응수한다. “경험도 없고 장비가 뭔지도 모르는 여자”란 말을 들으며 힘든 세월을 보내기도 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처음 반대하던 남편도 그녀를 격려하고, 돕는 큰 조력자가 됐다.

고난을 이겨내고 도약으로

CTP가 기획한 충남산업단지 홈페이지 구축 작업이 최 사장의 첫 작업이다. 홈페이지 제작 의뢰도 이어지면서 시작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1년도 안돼 IT산업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한 장비제조업체로부터 전산실무 컨설팅을 의뢰 받은 한 장비업체 사장이 사업을 맡아보라 제안했다.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곳 조차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동종 업계 선배들이 “최 사장에게 일을 주지 말자”는 담합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좌절’이란 단어와 타협하진 않았다. 직접 뛰어다니며 일감을 따냈다. 외국계 회사와 일을 하려 할 땐 사전을 갖고 다니며 몸짓 발짓을 동원했다. 그의 부지런함, 성실함, 끈질긴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어 갔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새 공장도 세웠다. 창고 같은 공장에서 벗어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기쁨도 잠시. 공장의 땅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땅을 팔면서 예상치도 못한 어려움이 닥쳤다. 다시 공장을 마련하고, 시설도 새로 했다.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그녀는 또 한번 공장을 이전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장비 불량으로 거래업체에 큰 손실을 끼쳐 거래 중단의 위기에 놓였다. 2007년 원자재 값 상승 등도 큰 악재였고, 내부 직원의 공금유용 사건도 발생했다. 직원 간 갈등도 그녀의 숙제였다. 최 대표는 홀로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귀국 직후 상황 수습을 시작했다. 외부 컨설팅을 받으며 문제점을 하나하나 고쳐갔다. 어려움에 빠져 있던 회사를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신뢰로 풀어갔다.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시스템을 개선해 나갔고, 거래처와의 관계도 새로 다졌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직원들과 함께 의논하는 법도 배웠다. 다른 사람들이 뱉는 쓴 소리는 물론 비아냥거림도 자신이 고쳐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고 흘려 듣지 않는다.



드리미 조직 들여다보기
두 조직의 자연스런 통합으로 효율성 극대화

통합조직의 시너지 효과 IT사업부와 전장사업부로 나눠진 드리미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함께 갖췄다. 두 사업부는 워크숍을 통해 공동 과제를 수행하며 사업성을 극대화한다. 초기 드리미에서 미묘한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던 두 조직이 화합함으로써 드리미는 다른 장비회사가 갖지 못한 경쟁력을 갖게 됐다.

네거티브 조직에서 포지티브 조직으로 최 사장은 사업초기에 회사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벌칙을 정하고 엄격하게 사규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마음 속 애사심을 기대할 수 없었다. 전문성에 한계를 느낀 최 사장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것을 현장에 적용해서 기술적인 공백을 메우고 칭찬과 안아주기를 통해 직원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인기투표 전체 임직원의 투표를 통해 가장 훌륭한 직원을 선정하고 포상한다. 사람과의 관계, 업무능력, 외모까지 선정기준이 되는 인기 투표는 직원들의 유쾌한 행사가 됐다.

과감한 포상 포상은 개선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이루어진다. 매월 개선 발표회 행사 이후 가장 호응이 좋은 활동에 5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포상제를 지속적으로 실시하자 종업원들은 일과가 끝난 후에도 현장을 살피며 개선활동을 연구하는 등 진지한 작업장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퇴출언어와 창의적 언어 세뇌시키기 회사 곳곳에 언어습관에 대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직원들은 이 포스터를 읽으며 퇴출 언어의 사용을 스스로 자제하게 됐다.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말들을 많이 사용하면서 회사 분위기는 이전보다 한층 부드러워졌다.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보고 느껴 고치게 한다. 최 사장은 이것을 ‘긍정의 세뇌 교육’이라고 말한다.

직접 보고와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 주로 사내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보고를 하고 직원회의는 새로운 아이템 제안이나 직원 전체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된다. 때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회사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 보고가 필요할 때 최 사장은 되도록 실무 담당자를 직접 부른다. 실무담당자는 수시로 사장을 만나 보고를 진행함으로써 업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게 된다. 실무자 직접보고 체계 속에서 최 사장은 자금의 결제나 일의 진행방향에 대해 되도록 빨리 결정을 내린다. 사장의 결정이나 지시사항이 직접 현장으로 전달되면서 업무는 효율화됐고, 고객과 협력 업체에 대한 일 처리도 빨라졌다.

데이터화 된 품질관리 2006년, IT사업부는 드리미의 사내 전산망을 구축했다. 자체 제작한 인트라넷에는 기존 전산 프로그램 제품에 없는 자재·생산일정 체크 등의 기능이 있다. 사장은 인트라넷의 내부결재 시스템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회사 전반의 상황을 파악하고 직접 지휘한다. 고객만족과 품질로 승부한다는 방침에 따라 장비 제조기술을 표준화했고, 불량발생 요인들을 데이터로 정리했다. 전 직원은 공개된 평가기준에 의해 기술과 업무능력을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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