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재미·읽는 재미 가득한 헌책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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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비오는 어느 날’ ‘20050632’ 등 책 구입 날짜를 기념해서 적어 둔 문구가 첫장에 보인다. 중간 중간 밑줄이 쳐진 부분에는 다시 한번 시선을 주게 된다. 헌책은 추억이 있다. 먼저 읽은 이의 손때는 같은 책을 선택했다는 묘한 인연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강남 한 복판에 이런 헌책이 주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북스리브로 강남점 '유북'이 바로 그곳이다.


“처음엔 일반 서점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어요. 깔끔하고 다양한 책이 구비돼 있는 데다 책 읽는 자리도 마련돼 자주 들르곤 하죠. 헌책방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내 한복판에 시설 좋은 중고서점이 있으니 너무 좋아요.”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북스리브로 강남점 유북(이하 유북)’에서 만난 김민혜(33·강동구 상일동)씨의 얘기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퀴퀴한 책 냄새와 뽀얀 먼지는 없지만 ‘책을 발견하는 재미’ ‘읽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이 이 곳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유북이 문을 연것은 지난 6월 북스리브로가 일반 서점을 신개념 중고서점으로 리뉴얼했다. 마케팅팀 전재관 과장은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고물품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늘어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며 "오픈 4개월여만에 목표 매출의 70%를 달성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북은 일반 서점과 다름없는 포인트 적립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책 구입가의 3.5%는 북스리브로 포인트로 적립되고 1.5%는 오케이 캐시백 포인트로 쌓인다.

새 헌 책 비치 ‘오늘의 유즈드 북’ 코너 인기

일반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금주의 신간’ 코너 대신 ‘오늘의 유즈드 북(Uesd Book)’코너가 서점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전날 들어온 새로운 중고책들이 비치되는 코너다. 매일 들여오는 수는 300~400권에 달한다. 이 코너의 책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오픈하기도 전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박미리(32·강남구 역삼동)씨는 “매일 새로운 책이 깔리는 오늘의 유즈드 북은 아침에 와야 제대로 책을 고를 수 있다" 며 "가끔은 그달 발간된 책을 반값에 사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문학과 경영, 경제 서적 코너는 대학생과 회사원들에게 인기가 높다. 50대를 훌쩍 넘긴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인근 대형 서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김대현 팀장은 “연세가 지긋한 분들 중에는‘균일가 1000원’ 코너를 꼼꼼히 체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분들은 한번에 30~40권의 책을 사 가곤 한다”고 소개했다. 직장인 안형수(44·서초구 잠원동)씨는 “회사가 가까이 있어 짬이 날 때마다 들른다"며 업무에 도움이 될만한 책이나 아이들 책을 주로 구입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책이 들어오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김 팀장은 “우연찮게 책이 들어와 한달 후쯤 연락을 했는데 손님이 그날 바로 책을 사러 왔다. 정말 보람된 순간이었다”며 특별한 기억을 떠올렸다.

50권 이상 팔면 서점 직원이 찾아가 구매

중고서점은 일반 서점과는 달리 사람들이 파는 책으로 운영된다. 많은 책을 사다가 서점 내에 책을 충분하게 마련해 놓는 것이 우선 과제다. 유북은 이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며 중고책 매입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계산대 반대편의 ‘중고 서적 매입 코너’를 이용하면 직접 책을 팔 수도 있다. 발행 시점을 기준으로 2006년 이전 책은 구간(舊刊)으로 분류돼 정가의 5~10%로 가격이 매겨진다. 2006년 이후 발행된 책은 정가의 15%를 받을 수 있다.

50권 이상 내놓으면 서점 직원이 직접 방문해 책을 사간다. 이렇게 매입한 책은 간단한 가공 작업을 거쳐 판매대에 놓인다. 얼룩이 묻은 표지는 닦아내고 가장자리에 보풀이 많은 책은 제단기로 살짝 잘라낸다.

읽은 책을 되팔고 싶으면 이달 초부터 내년 1월까지 진행되는 이벤트를 이용하면 된다. 인터넷 서점 리브로(www.libro.co.kr)에서 기간내에 책을 구입한 후 같은 기간 내에 유북에서 되팔면 정가의 25%를 쳐준다. 일반 서적을 판매할 경우 최대 가격이 정가의 15%인 점을 생각하면 좋은 기회다(단, 잡지와 학습지 제외.영수증 지참 필수).

[사진설명]취업준비중인 이수련(21)씨가 신개념 중고서점 '유북'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

< 사진=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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