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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쟁중단' 선언 말뿐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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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야가 새로운 세기의 개막을 앞두고 정쟁(政爭)중단과 새로운 세기를 향한 정치권의 다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지난 2년 가까이 끊임없는 정쟁과 국회의 공전, 장외투쟁, 그리고 남발된 정치권 상호간의 고소고발사태를 지켜보면서 정치에 질려버렸던 국민들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최근 들어 벤처신당이니, 개혁신당이니 하는 새로운 신당에 대한 지지도가 오르는 것은 따지고 보면 모두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적인 지지로 보인다.

이런 기존 제도권 정당들의 위기감을 바탕으로 국민회의측과 청와대측은 야당에 대해 상당히 유화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정치적 화해를 위한 몇가지 신호를 보내고 있고 야당도 '털 것은 털자' 며 정쟁중단이란 말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런 것들이 합의에 이르자면 몇가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가로 놓여 있다.

야당으로선 여권이 검찰권을 이용해 압박해온 몇가지 사건의 깨끗한 종결을 희망할 것 같다.

세풍(稅風).총풍(銃風)사건 등이 그것이고, 최근에 와서는 정형근 의원 고소사건 등이 그런 유에 들 것이다.

언론문건 국정조사문제는 정부.여당에는 목에 가시다.

이 사건을 길게 끌면 정부의 언론장악음모가 선거전의 이슈로 등장할 수 있다.

이래저래 서로간의 의혹과 그동안 겹겹이 쌓인 불신이 여야 수뇌의 만남과 정치권의 공동선언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자칫하면 따로따로 정쟁중단을 선언하고, 따로따로 밀레니엄선언을 하는 꼴불견사태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된다.

이래선 안된다.

여야 수뇌들이 함께 모여 지금까지와 같은 퇴행적(退行的)인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천명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소.고발도 서로 취하하는 등 과거를 진짜 훌훌 털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년 선거를 제대로 치르기 위한 다짐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의 전초전 양상을 보면 지역감정의 회오리가 우려할 수준이다.

엄청난 돈질과 폭로전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혼탁한 선거가 될 것이라는 게 국민들의 걱정이다.

그런데도 최근에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정치개혁 한답시고 국회의원들이 자기네들 선거에 유리하게 법안을 뜯어고치고 국민세금을 뜯어낼 궁리나 하고 있는데도 여야 총재들은 마치 자기네들은 모르는 일처럼 뒷짐지고 있다.

이런 입법과 정책의 누적이 정치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여야 총재들이 진짜 해야 할 일은 정치개혁입법을 제대로 챙기고 내년 선거의 공명성을 위해 최소한의 몇가지 구체적인 합의을 하는 게 중요하다.

정치개혁을 위해 의원수를 20~30명은 줄여야 한다.

그리고 정치자금의 엄격한 관리를 위해 선거 후 선거자금의 회계감사를 받는 등 획기적인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사진이나 한장 찍고 무슨 공허한 선언이라도 한다면 국민들을 또 한번 실망시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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