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비폭증, 뭘 믿고 펑펑 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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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동안 주춤했던 고가품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한다.

12월 들어 수입이 47.8%나 늘어 사상 최고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경기회복에다 코스닥 주가폭등 등 증시활황으로 떼돈을 거머쥔 '벼락부자' 들이 늘어나면서 과소비로 사회 전반에 흥청대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조짐이다.

수십억원대 빌라와 고가 수입품들이 '불티' 가 나고, 사치성 해외여행이 급증하는가 하면 특급호텔에서의 송년파티 등으로 서울 강남의 밤거리는 연일 인파와 자동차들로 메워진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2년을 '죽어 지낸' 터여서 모처럼 기지개를 켜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 해도 최근의 고가품 소비급증은 단순한 소비회복 수준을 크게 넘어선다.

위스키.호화의류.보석류.골프용품.외제자동차 등 고가품 수요는 이미 IMF 이전 수준을 훌쩍 넘어섰고, 해외여행자수와 해외에서의 씀씀이도 IMF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외제 고급자재로 치장한 호화빌라의 분양경쟁률이 1백대1을 넘어서기도 한다.

이 때문에 수입이 급증하고, 산업자원부는 올해 무역수지 흑자 목표달성의 차질을 우려해 흑자목표를 수정하느라 부산하다.

경기가 일부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급상승하고 취업률도 환란 이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소비 또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회복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불확실성과 거품 또한 적지 않다.

경기가 지표상으로 크게 상승하고 있긴 하지만 부문별로 양극화가 심하고 착시(錯視)현상도 두드러진다.

코스닥 열풍에 덩달아 종합주가지수는 올들어 62%나 올라 1, 000대에 육박했지만 정보통신주나 인터넷 관련주식만 폭등했을 뿐 증시 전반이 느끼는 체감(體感)지수는 600대로 여전히 싸늘하다.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하느라 올들어 가계대출이 무려 7조원 가까이 늘고, 최근 사흘간의 코스닥 폭락장세로 개미군단이 입은 투자손실만도 3조4천억원으로 추정되는 현실이다.

주식투자로 돈이 돈을 버는 시대가 본격화되고, 증시의 질적인 변화로 신흥 부유층들이 생겨나면서 개중에는 하룻밤 술값으로 수백.수천만원을 탕진하는 사례도 들린다.

그러나 이들의 극단적인 소비열기에 얹혀 '묻지마 투자' 와 '우선 사고 보자' 는 식의 고소비로 흥청댈 경우 결과는 가계의 파산과 국가적 경제위기로 이어질 뿐이다.

그러잖아도 우리 사회의 계층간 격차와 소득분배 구조의 악화는 가위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노숙자가 수천명에 이르고, 지금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거나 학교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15만여명에 이른다고 하지 않는가.

외제 등 고가품 선호풍조는 한때 외환위기의 주범으로까지 지목됐었다.

불과 2년 만에 되살아난 일부계층의 과시적 거품소비는 국민적 위화감 조성은 물론 또다른 외환위기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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