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인생 30년 책 낸 대구시 무형문화재 김수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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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이현동 서구문화회관 3층 무형문화재 전수실에서 천왕메기 예능보유자 김수기(69·대구시 무형문화재 제4호)씨와 문하생들이 굿거리장단에 맞춰 연습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서구 이현동 서구문화회관 3층 ‘무형문화재 전수실’.

200㎡(70평 정도)쯤 되는 공간을 들어서니 벽면 가득 북과 징·꽹과리 등이 보였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사람 크기만한 천왕 그림이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4호인 김수기(69) 예능보유자가 전수 중인 비산 ‘천왕메기’의 그 천왕이다. 김씨는 “천왕이 본래 비산1동 1번지(지금의 인동촌시장 자리)의 당집에 모셔져 있었다”며 “주민들은 400년 전부터 재앙을 막고 비를 오게 해 달라고 천왕에게 빌었는데 그 행사가 천왕메기”라고 설명했다. ‘메기’는 ‘앞소리를 메긴다(두 편이 노래를 주고받을 때 한편이 먼저 부른다는 뜻)’고 할 때의 ‘메기다’에서 온 것이다. 지신을 밟는 동제인 천왕메기는 6·25 직전까지 이어졌다. 관련 단체는 1953년 용케도 다시 결성됐다. 아쉬운 것은 60년대 개발에 밀려 당집이 철거된 것이다. 천왕메기를 끌어가는 비산농악은 그때부터 지휘자 격인 상쇠가 이어져 김수기씨가 3대째다.

그가 최근 농악 인생 30년을 정리한 『꽹과리로 한 우물을 판 국악인 김수기』(박동희 저, 북랜드)란 책을 펴냈다. 지역 농악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어서다.

김씨는 고향 밀양에서 농악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꽹과리를 치고 싶어 어렸을 적 쇠로 만든 재떨이를 두드리며 상쇠 흉내를 냈다. 그는 결혼해 대구에서 떡방앗간을 하다 동네에 들른 농악단을 보고 찾아간 게 한평생 꽹과리에 ‘빠진’ 계기였다. 그는 당시(38세) 대구 비산농악단 상쇠 임문구로부터 꽹과리를 배웠다. 대부분 60이 넘은 단원들 사이서 그는 유일한 젊은이였다. 북도 배웠다. 북춤을 인정받아 그가 농악단 총무를 맡은 83년 날뫼북춤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다. 3년 뒤엔 임문구에 이어 3대 상쇠가 되고 천왕메기는 다시 전국민속경연대회(88년)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차지했다. 대구시는 그 공로를 인정해 89년 김씨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무형문화재로는 파격적인 나이인 49세 때였다.

“마당놀이인 농악은 젊은이를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게 김덕수패가 서울에서 선보인 무대용 사물놀이였어요.”

그는 87년 지방에서 처음으로 사비를 들여 ‘달구벌 사물놀이패’를 창단하고 상설 연습장을 마련해 후진을 양성했다. 덕분에 사물놀이는 지역에서 학생과 주부들 사이로 폭넓게 파고 들었다. 전국사물놀이경연대회도 만들어 대구에서 18년째 이어지고 있다. 무형문화재가 된 뒤 그는 전수조교(2명)와 전수장학생(7명)을 양성하며 대구시에서 한달에 70만원을 받고 있다. 공식 수입은 그게 전부다.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정 살림은 방앗간을 맡은 아내가 다행히 해결해 주었다. 그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전수실에서 학생·주부 등에게 농악을 지도하며 보낸다.

김씨는 앞으로 비산농악을 악보로 남기는데 매달릴 계획이다. 후학을 위해 체계화가 필요해서다. 그는 또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릴 때 대구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대구의 무형문화재를 보여 줄 마당이 펼쳐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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