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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의 빛과 그림자] WTO와 NGO 시애틀로 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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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 혹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란 영화를 봤나요? 차분하고 아름다운 미국의 도시 시애틀을 배경으로 홀아비(배우:톰 행크스)와 한 여인(배우:멕 라이언)의 사랑을 그린 영화죠.

그런데 이 아름다운 시애틀이 지난 1, 2일 최루가스와 화염병으로 가득찼다고 하네요. ' 이 곳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World Trade Organization)회의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몸싸움까지 하면서 반대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죠. 양심수 석방(인권)이나 반핵(환경)문제 등을 다루는 일반 시민의 모임을 시민단체라 하죠.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라고 해서 비(非)정부기구, 영어로는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 라고 하고요.

NGO가 왜 WTO회의를 반대했을까요. 우선 '무역' 이 어떤 것인지부터 볼까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무역이라 하지요. 물론 은행.여행.통신 등의 거래도 포함됩니다.

쿠웨이트와 한국만 있다고 생각해 봐요. 쿠웨이트는 한국에 없는 석유가 나오지만, 한국은 쿠웨이트에 없는 자동차 회사가 많지요. 한국은 쿠웨이트에 차를 팔고(수출) 그 돈으로 석유를 사오지요(수입). 두 나라 모두 차에 석유를 넣고 타고 다닐 수 있을 테니까요. 이 경우 한국은 자동차 만드는데, 쿠웨이트는 석유 생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해서 '절대우위' 를 갖는다고 하지요.

한 나라가 두 상품 모두 싸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요. 자동차 한 대 만드는데 미국이 75명.한국은 1백명, 쌀 한 가마니에 미국 50명.한국 1백명이 일해야 된다고 상상하죠. 미국은 상품을 팔기만 하고 한국은 사기만 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겠죠. 미국은 50명밖에 일하지 않는 쌀을 한국에 팔고 1백명이 일해야 하는 한국 자동차를 살 거예요.

한국보다 노동력이 훨씬 적게 드는 쌀을 팔면 그 돈으로 더 많은 자동차를 사올 수 있을 테니까요. 한국은 반대의 경우겠죠. 국내에서만 거래할 때엔 차 두 대 팔아 쌀 두 가마니밖에 받지 못했지만 '무역' 을 하면 미국에 차 두 대 팔아 쌀 세가마니를 가져올 수 있으니 얼마나 이익이 되겠어요. 이때 미국은 쌀 생산에, 한국은 자동차 생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해서 '비교우위' 가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니 두나라는 '비교우위' 가 있는 제품만을 계속 생산하려 하겠죠□ 그러면 나라의 이익이 곧 국민 모두의 이익이 될까요.

'철이 아빠' 는 자동차 회사 주인이고, '영이 아빠' 는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해 봐요. 무역이 계속될수록 철이 아빠는 자동차를 미국에 팔고 영이 아빠네 1백원짜리 쌀보다 50원 싼 미국 쌀을 사다 먹겠죠. 결국 영이 아빠는 쌀이 안 팔려 농사를 그만둬야 할 겁니다. 나라 전체로 보면 이익이지만 영이 아빠에게는 피해인 셈이지요. 영이 아빠는 "생존권 위협하는 농산물 수입 중단하라" 고 시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부도 농민의 반발이 너무 크고 '가격문제' 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쌀 수입을 조금만 허용하거나 높은 세금(관세)을 물리겠죠. 한국이 미국 쌀에 50원 이상의 관세를 매기면 미국 쌀이 한국 쌀 값(1백원)보다 비싸져 사람들이 사지 않겠죠. 이렇게 되면 미국은 "우리도 한국 자동차에 세금을 물리겠다" 며 보복할 것이고요. 이를 무역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자유무역' 과 반대의 뜻으로 '보호무역' 이라고 하지요. 자유무역이 두 나라에 모두 이익을 주지만 나라 안팎의 입장 때문에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게 된 것이죠.

지구엔 나라가 많죠. 이들 입장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할 국제기구가 필요하겠죠?

무역 규칙을 만들고 지키지 않는 나라에 '벌칙' 을 주자고 만든 것이 WTO예요. 95년 1월 자유무역을 늘리고 무역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규칙을 세우고 실행하는 기구로 WTO가 생겼어요. '경제 크기, 업종 등에서 제한을 두지 않고 '규칙에 따라' 경쟁하자는 것이지요. '여기엔 "WTO가 정한 자유무역 조건을 지키겠습니다" 라고 약속한 나라(미국.일본 등 1백35개국)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애틀 회의도 이 회원국 대표들이 새 무역 약속을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이고요. 농산물.서비스 자유화 등 앞으로 3년간의 무역 주제(의제)를 어떤 것으로 할지 협상했어요. 결국 여러 나라의 입장 차이로 의제를 정하지도 못했습니다.

회의기간 내내 NGO회원 5만여명이 모여 'WTO 반대' 구호를 외쳤고요. ' 무역에는 밝고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WTO를 통해 무역자유화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 나라와 NGO의 반발이 거세진 것이지요. '실타래' 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이겠죠? '

대부분의 NGO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등 무역 자유화로 인한 피해는 근로자가 입는데 이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고 주장하고 있어요. 영이네와 철이네 처럼 무역을 하면 여러 나라의 입장도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겁니다.

여러 나라의 상황과 자기네 나라 사람들에 대한 NGO의 입장이 얽혀서 일어난 일이겠죠, 이에 대해 WTO는 "수입이 늘어나 직장을 잃는 사람이 잠시 생길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출품 만드는 회사는 더욱 커져 새로운 일자리가 마련될 것" 이라는 입장입니다.

'나라의 크기 등에 따라 자유무역을 제한해야 한다' '무역자유화는 나라 전체로 볼 때 이익이다' - .어떻게 생각하나요. 2000년에 열릴 WTO회의에선 어떤 주장이 받아들여질까요.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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