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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맛집 ⑤ KAL 폭파범 김현희, 고기 먹다 눈물을 '펑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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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새댁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울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셨죠.” 경북 문경의 ‘새재 할머니집’ 남욱진(51) 대표는 그날을 회상했다.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하여 공중 폭파됐다. 이 사고로 115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고, 폭파범 김현희는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됐다. 이후 국가안전기획부의 관리를 받던 김현희가 ‘새재 할머니집’을 방문한 것이다. “어머니께서 왜 안 먹고 울기만 하느냐고 물으시니까, 맛있는 음식을 보니 북에 있는 가족이 생각난다”고 하더래요.

“놀면 손에 꽃 피냐?”

지난해 12월 별세한 황학순 할머니는 문경의 명물 ‘새재 할머니집’을 창업했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 여섯 어린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행상에 나선 황 할머니는 19칸짜리 산장을 지을 정도로 장사 수완이 좋았다. “어머님께서는 정말 부지런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게에서 일하셨고, 장부 정리까지 하셨죠.”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장부를 매만지며 남욱진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놀면 손에 꽃피냐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어요. 41년간을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까지 장사를 하면서 보내셨죠.”

하루에 150근, 약돌돼지 양념구이 400~500판 팔려

오늘의 ‘새재 할머니집’이 있기까지 일등 공신은 단연 ‘돼지고기 양념구이’. 문경 새재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새재 산장’을 운영할 때 탄생한 메인 메뉴다.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양념한 돼지고기를 연탄불에 구우면 그 맛이 끝내줍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님도 그 맛을 잊지 못하시고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셨죠.” 윤보선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부인 공덕귀 여사와 산행을 즐겼다. 마침 문경 새재를 들렀다 처음 먹어본 ‘돼지고기 양념구이’의 맛은 이후에도 윤 전 대통령의 발길을 문경으로 이끌었다. 대통령의 발길을 붙잡은 이 양념구이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고기와 소스, 그리고 구이법에 있었다. '새재 할머니집'의 돼지고기는 문경에서만 나는 ‘약돌돼지’을 쓴다. ‘약돌돼지’는 Ho(피부질환, 간암 치료제 사용), Se(중금속 흡착제거)성분이 다량 함유된 거정석을 갈아 먹여 키운 것으로 육질이 쫄깃하고 맛이 고소하다. 또한 직접 담근 고추장과 순수 국내산 재료가 곁들여져 완성된 소스는 돼지고기의 비린내와 느끼함을 잡는다. 여기에 석쇠로 숯불에 구우면 기름까지 빠져 최상의 맛이 탄생한다. 이 환상의 궁합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새재 할머니집’은 연일 문전성시. 하루에 150근, 석쇠판으로 400~500판 정도가 팔린다. 특히 주말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아예 맛볼 생각을 말아야 한다.

장관 부인도 ‘새댁’이라고 불러

41년간의 장사에 단골은 당연지사. 황학순 할머니에겐 윤보선 전 대통령,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연예인 등 정계·재계 할 것 없이 다양한 단골이 있었다. “손님들 덕에 먹고사는 것이니 손님들께 늘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사람이 재산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거죠.” 단골이 많다 보니 해마다 명절이 되면 선물 역시 많이 보내야 했다. “명절 2~3개월 전부터 선물 준비를 하세요. 산에서 직접 채취한 나물·밤·땅콩 등을 잘 말려두시고 그것을 포장해 선물로 보내셨어요. 돈보다는 정성이었죠.” 매년 그렇게 보내진 할머니의 정성은 받는 사람에겐 큰 감동이었다. “장관 부인께서 '감사하다'고 전화를 하시니까 ‘새댁’ 그 나물 잘 볶아서 제삿상에 올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성 다하라" 유언…"인간 사랑 이어가겠다"

'창업주' 황학순 할머니의 ‘새재 할머니집’은 외아들 남욱진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주방에서 일하는 할머님들께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며느리한테 음식 비결 좀 잘 가르쳐주라고. 그래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어머님께서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팀이 오면 스타들에게는 제값을 다 받으셨어요. 하지만 엑스트라 분들께는 할인도 해드리고 음식도 더 가져다주곤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물으니 스타들은 돈을 많이 벌고 엑스트라 분들은 그게 아니라서 그런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님의 이런 따뜻한 '인간 사랑'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뉴스방송팀 최영기,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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