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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취재일기

뚫린 것도 모르고 … 조롱당한 ‘철통 경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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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7일 오후 3시30분.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남한 주민 강동림(30)이 26일 동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진 월북했다”고 전했다. 강동림이 예전에 근무했던 강원도 고성군 22사단의 연대·대대·소대까지 소개했다. 그쪽을 통해 왔다는 암시였다. 그로부터 4시간 후. 합동참모본부는 보도자료를 냈다. 22사단의 철책이 뚫린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북한 방송이 나온 뒤에야 부랴부랴 확인에 나선 결과다. 강동림이 26일 월북했다고 보면 하루가 더 지나고서다. 북한 방송이 부대를 세세히 보도하지 않았다면 경계의 허점은 훨씬 나중에 드러났을 수도 있다. 북한은 조롱했고, 우리 군은 수모를 당했다.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설치된 3중 철책은 모두 가로 30㎝, 세로 40㎝ 크기로 절단됐다. 하루 사이에 경계병들이 수십 번 순찰을 돌았을 지점이다. 경계병들은 조를 짜 야간에 약 10분마다 전방 철책을 한 번씩 순찰한다. 더구나 아침에는 전날 밤 철책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재확인한다. 그런데도 그 큰 구멍을 파악하지 못했다.

합참은 2004년 전방 철책이 뚫린 뒤 경계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또 다시 철책이 뚫린 것은 경계 시스템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강동림이 최전방 초소(GOP)에서 복무했더라도 민간인 통제선을 지나 철책 부근까지 접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철책 가까이 갔어도 경계병들의 순찰 간격을 확인하려면 하루 이상 숨어서 관찰해야 한다. 전문 절단기로 4m 간격으로 설치된 이중 철책을 뚫고 지나가려면 10분 정도 걸린다. 이곳을 통과해도 군사분계선 쪽으로 1.2㎞ 떨어진 추진 철책을 한 번 더 지나가야 한다. 군의 경계 근무 태세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전방 초소에는 수㎞ 이내의 사람이나 동물의 움직임을 체온으로 파악하는 열상장비(TOD)도 설치돼 있다. 그런데도 강동림의 움직임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군 경계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군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늘 밤이라도 전투가 벌어지면 싸워 이기겠다는 우리 군의 구호인 “파이터 투나잇”은 어디로 갔는가.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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