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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우리문학 나름대로 성과있었다"…30일 민족문학대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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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혼성모방.신세대문학 등 90년대 우리 문학의 징후에는 곧잘 부정적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이 저간의 사정. 특히 70, 80년대 민주화열정에 치열하게 투신했던 작가들에게 90년대는 "6월항쟁을 통하여 역사의 주인으로 부상했던 민중이, 승리한 그 순간부터 어이없게도 우둔한 상품소비자로 전락해버린 아이러니" (소설가 현기영씨의 표현)로 기억되곤 한다.

그런 90년대가 저무는 지금, 90년대 문학에 대한 그간의 부정적 평가를 넘어서려는 논의가 민족.민중문학 입장에서 한창 흘러나와 눈길을 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신경림)가 오는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하는 '99민족문학대토론회-21세기와 한국문학의 전망' 은 그 대표적인 공론화의 장. 문학평론가 황광수씨가 발제하는 '90년대 한국문학의 평가와 반성' , 소설가 현기영씨가 발제하는 '21세기와 한국문학의 전망' 등 4개 소주제로 전개될 이번 토론에는 신승엽.이광호.김사인.정과리.황종연.진정석씨등 다양한 입장의 30, 40대 젊은 평론가들이 대거 토론자로 참여하고, 한동안 현장비평을 떠나 환경운동에 몰두했던 문학평론가 김종철씨(영남대교수)가 '문학과 생태학적 상상력' 을 주제발표하는 등 일단 민족문학 논의를 되살리고 확장하려는 시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리얼리즘과 새로운 창작방법의 모색' 주제발표를 맡은 문학평론가 이병훈씨는 90년대 우리 문학이 겪은 고민을 한국사회의 특수상황이라기보다는 20세기 예술일반의 위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시각을 넓히면서 90년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상쇄한다.

기술복제의 시대이자, 인간복제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시대양상은 고전적인 예술개념과 유형에 대한 부정을 불러왔고, 19세기 전반기에 발생한 문학조류로서의 리얼리즘이 위기를 맞게 된 것도 이같은 양상의 일환이라는 것. 이씨는 현대문학의 과제는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가 아니라 "양자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과 현실의 새로운 관계와 본질을 직시하여 그것을 예술적 진품(眞品)으로 창조하는 것" 이라고 주장하면서 종래의 리얼리즘 틀에 집착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토론에는 직접 나서지 않지만, 민족문학이론의 좌장(座長)격인 평론가 백낙청씨(서울대교수)가 오랫만에 내놓는 언급도 주목할 만하다.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1년간 미국에 머물다 이번 가을 귀국한 백씨는 계간 '21세기 문학' 에 실린 후배 평론가 방민호씨와의 대담을 통해 "90년대 문학을 표절시비로 시작해서 표절시비로 저물고 있다는 식으로 특징짓는 데는 불만" 이라면서 "훌륭한 문학작품이 생산된 양으로 본다면 90년대가 80년대나 그전 연대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속단" 이라고 말한다. 백교수는 고은.신경림.현기영.박완서. '토지' 완간.최하림.오규원 등의 문학이 90년대의 성과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다.'면서 "더 아래 세대로 내려가더라도 80년대에 각광받았던 백무산 시인의 진짜 업적은 90년대에 간행된 두 권의 시집" 이고, "일부 문학성이 탁월한 수기들이라든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같은 것도 당연히 90년대 문학의 성과로 꼽아야 할 것" 이라고 덧붙인다.

'90년대 작가' 라는 편리한 딱지에 국한해 '90년대 문학' 을 논의하는 태도를 질타한 그의 언급은 패배주의적 평가가 만연했던 90년대 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환기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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