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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라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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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세계에서 제일 애 낳기를 싫어하는 여자가 우리나라 여자란다. 애 낳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며 정부에선 난리가 났다. 남편과 합하여 둘을 세상에 내놓은 나는 내 몫은 했건만 결혼한 딸 둘이 도무지 애 낳을 생각을 안 하니 나 또한 죄스럽다.

친구 딸 결혼식에서 결혼 적령기의 애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결혼은 직장일이 안정된 후에 생각해보고 그때도 적당한 신랑감이 없으면 혼자 살겠단다. 그나마 결혼한 애들도, 출산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있을 때까지로 미루겠단다. 요새 감원이 있어서 긴장된다며 이 상태로는 낳아도 하나쯤, 어쩌면 못 낳을지도 모른단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보건복지가족부가 ‘가치관 교육 중심의 인구 교육을 하겠다’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출산과 가정의 소중함을 교육해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한다는 ‘인구교육지원법’이다. 개개인은 서구적인 가치관, 가족 얘기만 나오면 보수적인 가치관. 뭘 가르쳐 줄지 심히 걱정된다.

‘가정의 소중함’. 늘 애용하는 정부의 단골 메뉴다. 화폐의 여성인물을 선정할 때에도 그랬다.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의 남다른 성과를 보인 여성’을 골라서 돈에 그려 넣어주기까지 했건만, 여전히 결혼도 마다하고 출산도 기피하니 이번엔 가치관 교육이란다. 교육의 이유가 ‘저출산의 근본적인 해결은 국민 개개인의 의식 개혁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데, 전적으로 동감!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의 의식 개혁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가정은 소중하다. 하지만 출산과 동시에 육아며 사교육이며 패키지로 따라오는 힘든 일들. 준비도 안 된 성급한 결혼과 출산이 높아가는 이혼율에 일조할까 봐 그게 겁이 나서 섣부른 시작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사회에서 준비해주면 그들도 움직인다.

얼마 전까지도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이 있었던 우리 사회에서 추진하는 가치관 교육. 어째 찜찜하다. 경리장부에서나 결손이라는 말을 들었지 가정에다 결손이란 말을 붙이는 이유는 뭔가. 제발 이번에는 ‘어진 아내, 영재교육’은 들먹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진 아내를 내세우면 결혼을 기피할 것이고 영재교육 운운하면 출산을 꺼릴 것이다.

요즘 남자들은 맞벌이 부부를 원한다고 한다. 단, 애를 낳기 전까지만이란다. 어쩌라고? 여자의 직업이 자아실현용이 아닌 생계용으로 변하고 있는데 여자의 직장은 취미생활인 줄 아나 보다. 애 키우고 오면 사회에서 다시 문을 열어 반긴다고? 아이의 능력 계발은 엄마의 몫이라고 잘난 척하는 교육전문가도 한마디 하던데. 바로 이런 것들! 이런 의식을 개혁시키는 교육 좀 해주면 좋겠다. 족집게 과외 한 달치도 안 되는 출산장려금이 여성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수나 있겠는가. 그 돈 받고 낳을 사람은 안 줘도 낳는다.

‘원하는 것을 해줘라.’ 새로 태어나는 미래인력. 키우는 건 나라의 몫이다. 여성부의 ‘워킹맘 지원 프로젝트’에 희망을 걸어본다. “엄마, 밤잠 설쳐가며 애써서 자리 잡은 내 직장, 애 키우다 놓치고 싶지 않아.” 말문이 막힌다. 큰일이다. 딸 대신 내가 애를 낳아 숫자를 보탤 수도 없고.

엄을순 문화미래이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