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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나라 원조엔 인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세계 부자 나라들이 냉전 이후 경제호황을 만끽하고 있음에도 빈국들의 재난.질병 등에 대한 구호에는 몹시 인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25일 특집기사를 통해 통렬히 비판했다.

미국의 경우 97년 국민총생산 8조1천억달러의 1천분의 1도 안되는 68억7천8백만달러를 대외원조에 기부했는데 이는 10년 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비율이다.

부자 나라의 이같은 인색함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90년대 들어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독일.프랑스.영국 등도 국민총생산 대비 97년 원조액 비율이 96년보다 현저히 낮아졌으며, 90년대 초.중반에 비해 평균 21%나 하락했다.

세계의 빈곤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년 전 결의를 무색케 하는 대목이다.

OECD는 96년 원조액 비율을 최소한 각국 GNP의 1천분의 7씩 높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 약속을 이행한 국가는 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스웨덴뿐이었다.

프랑스를 제외한 서방선진 7개국(G7)을 포함, OECD 15개국이 목표치의 반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다 못한 유엔이 팔을 걷어붙이고 부국들을 상대로 "돈을 좀 더 내라" 고 촉구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유엔은 서부 사하라 지역 원조에 8억달러의 긴급원조를 요청했으나 요청액의 5분의 3에도 못미치는 액수가 걷혔을 뿐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이 르완다.콩고.부룬디 난민원조에 소요되는 비용을 2억7천8백만달러로 추산했지만 올 10월 현재 45%밖에 기부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엔기구들은 대외원조 활동을 회원국들의 기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부자 나라들의 외면과 인색함은 원조활동에 큰 타격이 되고 있다.

부유국들의 대외원조 기피현상만큼 심각한 것은 원조가 적절한 곳에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구호기관들이 언론의 초점을 받는 지역 위주로 지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소보 난민돕기.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은 "원조가 코소보 지역에 집중돼 우리는 소외감을 느낀다" 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유엔대표는 "코소보 난민 1명당 하루 지원액은 1달러50센트인데 비해 르완다 난민에게는 고작 11센트의 지원금만 돌아갈 뿐" 이라고 투덜거렸다.

미국의 대표적 구호기관인 케어 USA의 대표 피터 벨은 "원조액을 기부하고 있는 부유국들은 우리가 거기(코소보)에 있기를 원한다" 고 토로하고 있다.

코소보 난민들과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야 도와준 국가.기구에 체면이 선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조차 자국의 구호기관 대표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유독 코소보 지원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였다.

원조의 지역적 차별에 다름아니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와 제임스 미첼 OECD의장은 "부유국들은 대외원조 감소라는 세계적 추세를 바꿀 새 전략을 세워야할 것" 이라고 촉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같은 세계경향에 대해 "90년대는 어느 곳에 얼마의 원조가 필요한지도 모르는 비도덕적 대외원조의 시대" 라고 규정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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