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연금법 고치지 않는 것은 부도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제 "국민연금법을 고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연금법을 고치지 않으면 20년 후 소득의 30%를 사회보험료로 내야 하며 이는 우리 아들 딸들에게 감당 못할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억울하지만 현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고도 했다. 연금개혁안의 정기국회 통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간절한 호소였다.

우리나라의 연금개혁은 주무장관이 도덕성을 거론해야 할 정도로 앞날이 불투명하다. 보험료율을 소득의 9%에서 15%로 올리고, 받는 돈은 60%에서 50%로 내리겠다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후세대의 과중한 부담을 생각한다면 정부는 어떤 비난과 불이익이 따르더라도 현 세대를 설득해야 한다.

세금과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쳐 국민 한 사람이 내야 하는 부담금은 지난해 사상 최고인 383만원을 기록했다. 국민 전체의 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25.5%다. '더 내고, 덜 받자'는 연금개혁이 무산될 경우 2050년에는 소득의 30%를 연금보험료로 내야 하고, 국민부담금은 소득의 절반에 이르게 된다. 경제성장과 국가의 활력은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상황이 심각하지만 여당에서조차 연금개혁에 확고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표를 잃을 정책은 미뤄놓고 보자는 심산인 셈이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올해 연금개혁 법안을 통과시킨 뒤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했고, 프랑스에서도 연금개혁을 추진하던 정권이 97년 총선에서 졌다. 선거에 불리함에도 연금개혁을 추진한 것은 연금파탄으로 인한 국가적 재앙을 막아야 하는 집권세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이 나설 때다. 지난 대선 때 "지급률을 깎으면 용돈제도가 된다"며 연금개혁과 어긋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야당 지도자도 만나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집권당 내에서조차 연금개혁에 물을 타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인기 없는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리인을 내세울 게 아니라 국정 최고책임자가 온몸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