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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선진국 국민들의 두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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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근래 선진국 주민은 대규모 저임 노동력을 바탕으로 욱일승천해 온 중국.인도와 여타 신흥경제 국가들의 위세에 적이 두려움을 갖게 됐다. 내 일자리, 후손들의 장래를 놓고 세계 최빈국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는 부자나라 정치지도자들에게도 큰 과제가 됐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신문기사의 양으로 가늠할 수 있다. 전 세계 영자지 기사 데이터 베이스인 렉시스-넥시스에 들어가 outsourcing(아웃소싱).jobs(일자리).India(인도)라는 세 단어를 한꺼번에 쳐 봤다. 1999년에는 39건이 다였는데 지난해엔 749개가 떴고 올해 상반기엔 검색건수가 1208개에 달했다. India 대신 China(중국)를 넣어봐도 결과는 비슷했다.

영문뉴스가 아니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말로 된 기사를 검색해도 갈수록 기사 건수가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체 기사의 90% 정도는 지난해 이후에 집중된 것이다.

왜 이렇게 관심이 폭발하는 걸까. 선진국 제조업의 일자리를 반세기 넘게 저개발국 또는 개도국에 빼앗겨왔다는 피해의식 아닐까.

우선 이동통신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정보기술(IT)의 개발.보급이 이에 한몫했다. 이들은 지구촌을 좁히고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외국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지적 자산을 교류하는 것을 촉진했다.

인도.중국으로 옮겨가는 일자리 가운데는 교육 정도와 숙련도가 꽤 높은 직종도 많다. 선진국의 주민들은 무자비한 고용시장에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대학에 가고 전문교육도 열심히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제1세계 국민은 이 정도로 경제적 지위를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한다.

신흥국가들에 대한 두려움은 2000년 IT 버블 붕괴 이후 부쩍 커졌다. 종합주가지수가 정점의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친 나라도 적잖았다. 이듬해부터 전 세계적 경기침체가 몰아닥쳤다. IT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실망했기 때문에 돈을 벌 다른 수단은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찌 먹고살지 조바심이 커지는 터에 해외의 도전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올 초 미국 4개 도시를 대상으로 집을 구매한 사람들을 설문조사한 적이 있다. 이런 질문이 있었다. '장래에 원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귀하의 능력이 주변 경제여건의 변화(중국으로 일자리 옮기기 또는 전산화 진전 등) 때문에 떨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였다. 설문 대상 442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전혀 걱정 안 한다'였다.

하지만 최근 비슷한 설문조사를 했더니 많은 사람이 실직의 두려움을 드러내는 등 불안심리가 커져 있었다. 실직 걱정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주택 등 부동산을 구입해 경제적.심리적 안정을 꾀하려는 경향도 나타났다.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나라 간 경제전쟁이 다반사로 벌어지면서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정치 과정을 변모시킬 것이다. 보호주의도 부상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개도국의 선진국 시장 진입을 도모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가 마련한 지난해 9월 칸쿤 회담이 실패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학생들은 요즘 교수인 나에게 과거와 다른 식으로 진로 상담을 해온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잘 해낼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한 듯 싶었다. 또 자기와 비슷한 여건의 중국인이나 인도인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 예전에는 미국인이라는 것 하나로 우쭐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신흥국가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이 너무 커지면 정치인들이 보호주의라는 손쉬운 해법을 내놓기 쉽다. 우리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로버트 J 실러 미 예일대 교수.경제학
정리=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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