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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기능장, ‘요리메카 천안’ 역사를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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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홍영옥 동갑내기 부부는 요리로 만나, 지금도 함께 요리하며 제자를 길러내고 자식을 키운다. 천안 다가동 한국조리아카데미 건물에 올 9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동시 입상한 두 아들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작은 사진) [조영회 기자]

‘국내 첫 부부 조리 기능장(2001년). 전국기능대회 첫 부자(父子) 금메달(2007년). 국제기능올림픽 형제 첫 동시 입상(2009년).’

천안 다가동에서 요리전문학원 ‘한국조리아카데미’를 12년째 운영하는 동갑내기 부부 박희준(46)·홍영옥씨 가족의 ‘신기록’들이다. 부부가 한해 걸러 잇따라 ‘요리 달인’(마스터 쉐프) 자격증을 따고, 둘째 아들 성훈(19)씨는 고교시절인 17세 때 기능대회 요리부문에서 부친(1986년, 당시 23세)이 딴 금메달을 대를 이어 목에 걸었다. 그러더니 2년 만인 올해 9월 형(청운씨·22)과 함께 국제기능올림픽에 나가 형은 호텔서비스 부문서 동메달, 자신은 아시아인 처음으로 요리부문 금메달을 땄다.

형제들 뒤엔 아버지 박희준 원장이 있었다. 이렇듯 천안을 세계적인 요리 메카로 만든 박 원장은 누구인가. 그는 지난 10년간 2년에 한번씩 뽑는 기능올림픽 요리 국가대표를 한 번 빼고 모두 천안에서 배출하게 한 사람이다. 서울의 많은 요리학원들이 이 엄청난 ‘업적’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세계적 요리사가 되려면 천안에 가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몇년 전부터 아들 성훈이가 나보다 더 유명해졌어요. 이젠 성훈이 아빠로 소개되고 있으니….” 그렇게 말은 하지만 흡족한 표정이다.

성훈씨는 세계를 놀라게 한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 “서울 롯데호텔 인턴 조리사였던 성훈이(대학 휴학중)가 하루아침에 대졸 3년 경력자와 같은 연봉을 받게됐어요. 대우는 좋아졌지만 대학을 마쳐야 하는데….”

부친 권유로 요리사의 길로

서울 대방동에 살던 박 원장. 아버지는 가까운 노량진수산시장에 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장남 박 원장의 고교 졸업이 임박해지자 아들의 진로를 고민하던 부친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우리 자식 어떻게 해야 하나” 상의하고 다녔다. 수산시장 생선가게 주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호텔 요리사를 시켜라”고 했다. 그들의 생선 고객 중에서 호텔 요리사가 가장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등 떠밀려 경주의 호텔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바로 여의도 반도호텔 주방에 취직했다. 모두 수산시장 상인들 네트워크 덕이었다.

그러나 초짜 조리사 생활은 힘들 나날이었다. 누구 하나 제대로 가르쳐주는 선배가 없었다. “요리로 승부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어깨 너머로나마 열심히 배웠다. 조리기술을 하나 둘 익혀나가자 기회는 찾아왔다. 명동 로얄호텔로 직장을 옮겼다. 솜씨를 눈여겨 본 조리실장이 그를 기능대회 출전선수로 뽑아줬다.

기능대회를 준비하던 85년 ‘어린 나이’(22세)에 인근 요리학원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같은 곳에서 한식 강의를 하던 부인을 만났다. 이듬해 전국기능대회 금메달을 딴 박씨는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모든 게 탄탄대로였다.

주위 권유로 어쭙잖게 청주에서 식당 사업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그러나 1년여 만에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기술과 경영은 다르다. 우쭐한 나머지,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본 탓이었다.”

호텔 조리사 시절로 돌아갔다. 금메달 경력 덕으로 파라다이스 호텔 체인에 입사, 도고호텔의 조리차장이 됐다. 천안·아산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요리사에서 명강사로

박 원장은 “나는 어렵게 요리를 배웠지만 후배들에게 똑같은 어려움을 주고 싶진 않았다”고 한다. 호텔서 시간만 나면 후배들을 앉혀놓고 요리를 가르쳤다. 도고와 가까운 홍성의 혜전대 호텔조리과에서 출강을 요청해와 처음 대학 강단에 섰다.

“그러나 대학은 커리큘럼 상 제약이 너무 많았다. 실전 요리와 상관없는 걸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빼앗겨야 했다.” 그래서 요리학원을 세우기로 작정했다.

“요리설비 설치가 많아 임대 보다는 건물을 사기로 했다. 적은 돈으로 조그만 건물을 살 수 있는 곳은 지방 뿐이었다.”

98년 지금 아카데미 자리인 다가동 신성아파트 인근 4층 건물에 학원을 열었다. 그후 그는 여기서 천안 요리의 역사를 쓰게 된다. 요리 교육에서 서양요리 전공 박 원장과 궁중한식에 정통한 부인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2001년 국제기능올림픽 요리부문에서 이원호군(당시 18세)이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을 수상했다. 2006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선 제자 3명이 요리부분 금·은·동메달을 싹쓸이 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요리타운

그의 음식 솜씨를 여러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레스토랑을 열 생각은 없나? 박 원장은 “부인·아들 둘과 함께 음식점·요리학원을 겸한 요리타운을 운영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요리가 아니라 뉴질랜드 대학에서 호텔 서비스를 배우도록 했다. “요리 솜씨만으론 최고의 음식점을 만들 순 없다. 20여년 전 나의 실수를 아들·제자들에게 물려줄 순 없다. 기술과 경영은 엄연히 다르다.” 그는 요즘도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음식점을 내겠다는 제자들한테 따끔하게 일러주며 결사코 말린다.

그는 2, 3년 후 요리 명장(名匠)에도 도전 할 생각이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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