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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Y2K 마지막 대비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정전사태로 암흑천지로 변하고 민간항공기 기기(器機)는 작동을 멈춘다. 핵발전소는 방사능 누출사고 위험에 처하고 현금자동인출기에선 돈이 한푼도 나오지 않는다. " 이는 미국 NBC방송이 오는 11월 21일 방영할 예정인 TV영화 'Y2K' 가 보여주는 컴퓨터 오작동 사태 장면들이다.

일단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은 단지 허구이며 NBC는 돈벌이를 위해 이러한 영화를 만들어 선량한 시민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Y2K문제가 일으킬 수 있는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두둔하는 전문가도 있다.

컴퓨터가 1900년과 2000년을 구분하지 못해 발생하는 Y2K사고는 이미 발생하고 있으며 2000년 첫날에 사고발생이 정점에 달한 후 점차 줄어들 것이다.

Y2K문제가 어떠한 상황까지 갈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양하다. NBC방송의 장면처럼 극도의 비관적 시나리오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약간의 해프닝으로 싱겁게 넘어갈 것이라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전문가도 있다.

이런저런 예측을 할 수는 있어도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Y2K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은 시간이 충분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2000년 첫날까지 해결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Y2K문제를 해결하는 데 세계적으로 1천조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선진국과 대기업은 많은 돈을 투자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지만 후진국과 중소기업은 마음이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또 이 문제는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전문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Y2K오류의 수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베이스 등의 정보시스템은 그나마 문제를 야기할 것을 예측할 수 있지만 자동화설비.통신장비.무기체계와 같은 비(非)정보시스템의 경우에는 내부에 컴퓨터의 존재 여부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외국에서 장비를 구입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Y2K문제는 나 홀로 컴퓨터의 독립된 문제이기보다 컴퓨터 집합과 연관된 문제다. 보내오는 자료에 2000년 표기가 잘 돼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 컴퓨터를 수정했다고 Y2K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안전성 검사를 위하여는 관련되는 시스템을 모두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실전과 같은 검사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검사를 못한 시스템이 잘 작동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Y2K문제의 발생을 막아보기 위해 어려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일부 대기업에서는 Y2K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발표한다.

또 Y2K 인증을 받았다고 발표하는 기관들도 많다. 목표한 Y2K 점검과 수정을 모두 마쳤을 때 어찌 아니 기쁘겠는가.

그러나 근거없는 낙관이나 방심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점검이나 인증이 완벽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도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발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품업체의 납품불능이나 수송지연, 상대방 컴퓨터의 다운으로 인한 통신두절 사태 등등 비상사태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Y2K 국민대처방안을 발표했다. 연말연시의 금융기관 및 병원 이용, 여행에 관한 적절한 행동지침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알린 것이다. 정부의 발표는 이제부터 Y2K문제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보다 발생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에 더욱 힘쓰라는 신호로 봐야 할 것이다.

즉 올해의 남은 두달 동안은 '예고된 사고' 를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예고된 사고' 에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알려진 위험의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태를 예상하고 그 상황에서 취할 가장 바람직한 행동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즉 비상계획을 세워두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제시한 Y2K 국민대처방안과 같은 형태의 기업의 Y2K 대처방안, 조직의 Y2K 대처방안이 각각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제는 동종의 기업들이 협력해 대처방안을 만들고 다수의 기업이 참여하는 훈련이 바람직하겠다. 인류가 지금까지 많은 고난을 헤치고 발전해 왔듯이 Y2K상황도 커다란 혼란 없이 슬기롭게 잘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

막대한 노력을 투자한 인류 최대의 고장수리 작업, 즉 인간이 만든 오류를 스스로 해결하는 역사적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을 믿는다.

Y2K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은 미래의 컴퓨터 시스템을 더욱 효율적이고 융통성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Y2K문제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진형<과학기술원 교수.전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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