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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문 닫는 날은 추석·설날 당일뿐 … 학생 있으면 교사도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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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02년 9월 임계화 전 풍덕고 교장이 아침 조회시간에 학교 운동장에 나타났다.

“자, 같이 외칩시다. 명문 풍덕고!”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무슨 명문이야, 명문은…”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 교사는 “다른 공립학교 교장처럼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경기도 용인시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비선호 학교였다. 2000년 개교 이후 처음 부임한 여교장은 처음엔 의욕 상실이라는 두터운 벽을 느껴야 했다. 그는 “교사도 학생도 모두 의욕이 떨어져 있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먼저 학교 옥상 위에 정원을 만들었다. 들꽃을 심고 옥상을 가꿨다.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학생들 공부를 시키려면 쉴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 뒤 전교생에게 매일 밤 11시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면학 분위기를 잡았다.

학생들은 토요일과 일요일도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학교가 문을 닫는 날은 1년 365일 중 추석과 설날 당일 이틀뿐이다. 문만 열어 놓는 게 아니다. 학생들이 한 명이라도 남아 질문을 할지 몰라 교장과 교사들이 학교에 남았다.

류수열 현 교장은 “임 전 교장이 밤 11시 이전에 학교를 떠난 적이 없어 ‘노처녀’라는 헛소문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타성에 젖어 있는 교사들에게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해 2004년부터 방과후 수업시간에 학생이 교사를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했다. 학원 방식대로 수강신청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이다.

교사 한 명당 두 개의 강좌를 학교 홈페이지에 개설하면 학생들은 강의계획서를 보고 교사를 선택했다. 인기 강좌는 수강신청 시작 이후 1분도 채 안 돼 마감됐지만 일부 강좌는 수강생 미달(20명 미만)로 폐강됐다. 자연스럽게 교원 평가가 이뤄졌고 점차 수업의 질은 높아졌다. 2학년 임본규(17)군은 “풍덕고에 입학하면서 학원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임 전 교장은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6개월 전 교사들에게 먼저 알리고 준비할 시간을 줬다. 교사들의 반발이 크지 않았던 건 이런 사전 공개 원칙 때문이었다. 배향숙 교사는 “교사 가정의 불행이 학교의 발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임 전 교장이 열정을 보였다”고 말했다. 풍덕고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자 용인지역 우수 중학생들이 몰려들었다. 1학년 학부모 송선주씨는 “사교육비 많이 안 들이고도 공부할 분위기가 되는 학교라는 입소문을 듣고 학교를 선택했다” 고 말했다. 임 전 교장은 올 9월부터 한국교원대에서 교장 자격 연수를 받는 ‘미래의 교장’들에게 학교 경영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다. 후배에게 그가 강조하는 교장의 자격 조건은 열정과 리더십 두 가지다. 그는 “교장이 고달파야 학교가 발전한다”며 웃었다.

◆학교 간 경쟁이 질 높인다=본지가 2005~2009학년도 수능성적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하위권 학생들이 크게 줄어든 학교의 지역은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나타났다. 용인시에서는 풍덕고뿐만 아니라 기흥고·죽전고 등 용인지역 3개 교가 6~9등급 비율을 70%에서 10~30%로 낮췄다. 풍덕고 안봉준 교감은 “경기도에선 용인지역 고교 교장은 피곤하다며 안 가려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시의 덕인고, 마리아회고, 혜원여고는 2005년 비평준화에서 평준화로 전환된 뒤 하위권 학생 줄이기 경쟁을 하고 있다. 마리아회고 김성태 교감은 “학교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수한 학생들이 오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련·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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