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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풍년 압력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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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냄비를 만들던 세광알미늄(현 PN풍년) 유병헌(1925~2002) 선대 회장은 60년대 말 유럽에서 살던 지인으로부터 현지에서 인기를 끌던 압력솥을 선물받았다. 신기한 제품이라고 여겼지만 국내 기술로는 만들 수 없다고 여겨 그냥 창고에 뒀다. 이후 70년 초 유럽 출장에서 다시 압력솥을 접한 그는 “요리 시간을 줄이고 요리를 맛있게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리도구”라고 생각해 개발에 들어갔다.

외국 압력솥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 봤지만 주로 고기와 채소를 익히는 데 쓰는 압력솥으로 밥을 짓자 설익는 문제가 발생했다. 외국 압력솥을 한국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압력 차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딱딱한 쌀을 밥물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 익히려면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압력을 올려야 했다. 추의 무게를 무겁게 하고, 추를 얹어 놓는 구멍을 될 수 있는 한 작게 만드는 게 노하우였다. 당시 연구와 생산에 참여했던 방홍구(73)씨는 “개발 초기 솥이 뻥뻥 터지고 얼굴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어 직원들이 개발팀에 근무하길 꺼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3년여의 연구 끝에 차진 밥을 지을 수 있는 한국형 ‘풍년 압력솥’이 73년 출시됐다. 초기엔 주부들이 압력솥을 쓰는 방법을 몰랐고 기존 냄비보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밥이 되는지, 밥이 얼마나 차진지도 눈으로 봐야 믿었다. 영업사원들은 가정 집을 돌아다니며 한 집에 동네 주부들을 모아 놓고 밥 짓기 시연을 하는 방법으로 압력솥을 알렸다. 70년대 주로 먹던 거칠고 깔깔한 ‘통일벼’로 지은 밥을 부드럽고 차지게 해 준다는 소문에 판매량이 점점 늘어갔다.

지난해 320여억원의 매출로 압력솥 시장 점유율 70%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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