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중국적 허용 범위 대폭 확대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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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부가 이중국적 허용 범위를 당초 계획보다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적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글로벌 고급인력과 해외입양인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복수국적을 인정하는 내용의 국적법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저출산고령화 추세와 사회통합 대책 차원에서 허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개정안을 다시 손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적 변화와 현실적 필요를 근거로 이중국적 제도 도입을 거듭 촉구해온 입장에서 크게 환영한다. 보다 전향적인 방향으로 국적법 개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100여 개 국가가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을 정도로 이중국적 제도는 이미 세계의 보편적 추세다. 1948년 건국 당시부터 이중국적을 전면적으로 허용해온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국가적 소속감을 고취시키고, 이들을 국내로 유인하는 수단으로 이중국적 제도를 활용해 왔다. 화교(華僑)의 경제적 비중을 중시한 중국이나 대만도 이중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혈통주의의 전통이 강한 독일도 선천적 이중국적자에 대해서는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뿌리 깊은 혈통 의식과 이중국적을 특권층의 전유물로 보는 부정적 인식 탓에 우리만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엄격한 단일국적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국적 취득자 수를 크게 상회하는 국적 상실자 수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현행 국적법은 이중국적자에 대해 만 22세까지 국적을 선택하도록 하고, 그중 병역의무를 마친 자는 2년 안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선택한다는 뜻을 신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기간 내 신고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은 자동상실된다. 법무부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이를 고쳐 병역의무를 마친 자는 따로 신고를 하지 않아도 한국 국적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해 국적상실의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중국적을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선천적 이중국적자가 된 우수한 한국계 인력을 유치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결혼이주자 증가 등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사회통합 차원에서 이중국적 허용 폭을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국내에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이주노동자에게 국적취득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저출산고령화 대책 차원에서 생각해 볼 만하다. 특히 연간 100명 정도에 그치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특별귀화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에 비해 확실하게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글로벌 노매드(global nomad)’란 말이 익숙할 정도로 우리는 이미 국경 없는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재외동포만 700만 명이다. 권리와 의무의 병행 원칙만 지켜진다면 보다 넓은 눈과 열린 마음으로 이중국적 문제를 바라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