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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의원이 공개한 보고서 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현 정권의 '언론장악' 을 위한 섬뜩한 음모를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얼마전 한 인사가 극비문건 하나를 건네왔다.

이 문건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강래(李康來)씨가 극비리 작성해 현 여권 실세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다.

문제의 보고서는 '성공적 개혁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방안' 이란 제목의 7쪽짜리 문건이다.

외부환경이란 다름 아닌 언론, 특히 신문이다.

보고서는 "옷로비 의혹과 파업유도 의혹사건은 민심 이반을 부추기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예전과 다른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 전제하면서 그것은 중앙.조선.동아 등 주요 언론매체들이 사건을 과대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정권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도적으로 조성한 때문이라고 했다.

金대통령은 6월 1일 러시아와 몽골을 방문하고 돌아온 기자회견에서 언론의 옷로비 의혹사건 보도를 '마녀사냥' 이라고 불러 언론계를 경악케 한 바 있다.

대통령의 그런 인식이 이 보고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기관리〓보고서는 "위기관리는 언론대책 마련에서 출발해야 한다.

언론대책은 서둘러야 한다" "언론을 야당 및 시민사회내 반호남 정서와 분리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충격요법을 통한 국면 전환이 절실하다" "새 언론대책은 총선 분위기로 전환되는 정기국회 이전인 8월말까지 전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고 언론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현 정권의 언론개혁이란 것이 실제로는 '언론장악 음모' 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보고서는 "언론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 장악력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과감한 언론개혁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고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이 언론개혁을 빙자한 언론장악 음모가 아니고 무엇인가.

보고서가 제시한 이른바 언론개혁의 구체적 방안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놀랄 만큼 일치한다.

◇충격 요법〓보고서는 먼저 개혁의 원칙으로 언론이 '특권 권력기관' 으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신문사 사주(社主)면 탈세해도 처벌 못하느냐는 여권의 논리와 똑같다.

구체적 조치로, 유력지를 필두로 탈세.누세.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관계 기관의 내사' 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관계 기관' 은 국세청.감사원.공정거래위.금융감독위와 함께 청와대.안기부.검찰.경찰 등이 총망라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빅3' 를 비롯한 언론사의 최대 취약점은 '세금 포탈' 부분이므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면 언론 개혁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현재 국세청과 공정거래위가 전면에서 언론대책을 집행하고 있다.

보고서는 "언론사들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는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요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져야 한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상당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언론들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제도적 혜택이 없어질 경우 예상 외의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이라고 분석하고 있어, 인위적인 언론 통폐합을 기도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충격요법으로 8월 이전, 문제가 가장 심각한 언론 사주 또는 고위 간부를 전격적으로 사법처리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고 제안하고 있다.

"설마 언론사 사주를 잡아 넣겠느냐는 허(虛)를 찌를 경우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켜 반(反) DJ정서 부추기기를 지속할 수 없을 것" 이라고 해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인적(人的) 청산〓보고서는 언론내에 포진한 '반개혁 세력' 을 '제작에서 격리하는 인적 청산' 도 병행해야 한다며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그 방법으로 이들에 대한 확실한 증거.자료를 수집한 뒤 외곽 단체에 흘려 이를 근거로 사법당국이 수사에 나서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보고서는 "중앙.조선.동아 등 유력지에 대한 견제가 느슨해지고 언론 개혁에 대해서도 자율에 의한 개혁이 강조됨으로써 대(對)언론 견제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고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조선에 이어 친여(親與)지로 분류됐던 동아가 야당지로 선회했으며, 동아의 선회는 정권 출범후 비교적 조심스런 행보를 취해온 중앙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빅3〓보고서는 이들 '빅3' 를 방치하면 개혁대상과의 싸움에 앞서 먼저 언론과 힘겨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함으로써 개혁추진에 차질을 빚고 16대 총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총선에서 이기려면 주요 신문부터 장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과감한 언론대책으로 '빅3' 중 1개지는 친여지로 만들고, 나머지 2개지도 최소한 노골적인 반정권적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그 방책을 별도로 제시하고 있다.

"조선.동아는 탈세 외에 오너일가의 불법.탈법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오너비리 조사가 마무리되면 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든 뒤 정부가 여론을 등에 업고 조사를 벌이는 게 바람직하다" 는 것이다.

실로 섬뜩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보고서는 중앙은 탈세 등을 집중 조사하면 별다른 어려움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사태다.

보고서는 특히 첫번째 대상은 조선을 택할 필요가 있으며, 다음으로 중앙 등으로 옮겨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언론 전체와 싸움을 벌이는데 부담이 큰 만큼 전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공작을 제안하고 있는 이 보고서가 "언론탄압이란 빌미를 제공하면 안된다" 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보고서는 각 부처 관계자들로 언론개혁 기구를 만들면 언론탄압 빌미를 주고 언론사들간의 단결을 유도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크다면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방송〓보고서는 방송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다.

방송에 대해서는 언론관계지인 '기자협회보' 와 '미디어오늘' 에 보도된 실상만 간략히 언급하겠다.

기자협회보 6월 7일자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MBC에 金대통령의 러시아 몽골 방문을 부각시켜 옷로비 사건보다 먼저 보도하라고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기자협회보에서 한 KBS기자는 KBS가 김태정 전장관의 거취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사실을 밝히면서 "KBS가 여권에 불리한 기사에 이토록 약해서야 무슨 면목으로 국민 앞에 공영방송이라고 운운하겠느냐" 고 개탄하고 있다.

6월 10일자 미디어 오늘은 청와대가 MBC 뽀뽀뽀 프로그램에 '제이와 건국이' 라는 프로그램을 삽입하라고 강요했고, MBC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언론계 각개격파〓이 정권이 언론에 대한 협박이 가능하다고 보고 실제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은 지난해 최장집 교수 사건이었다.

이 정권은 당시 언론계가 단결해 대처하지 못하는 사실을 보고 그때부터 언론 각개격파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아닌지 묻는다.

박준영 공보수석은 최근 8.15경축사 내용 중 재벌해체 문제가 언론에 부각되자 "특정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 이라고 밝혀 언론을 위협했다.

오늘 제기한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에 대해 현 정권은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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