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의 '숨은 인형 찾기'…돋보기로 보는 별난 작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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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마이크로 코스모스. 아주 아주 작고 작은 인형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눈을 장시간 가늘게 뜨는 것이 피곤한 사람은 돋보기를 필히 지참할 것. 제목? 없다. 의미? 역시 없다.

다만 'Have Fun!' (즐기자!)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미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아니던가.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예술 말이다.

지난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새롭게 문을 연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첫번째 작가로 선정돼 개인전을 열고 있는 함진(21)씨는 '열 손가락의 마술사' 라는 칭호를 붙여줄 만하다.

불과 1~2㎝ 남짓한 크기의 찰흙 인형이 그의 손가락 끝에서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진다.

솜으로 붙인 헝클어진 머리칼 하며 비뚤빼뚤 붙어있는 눈.코.입 등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전시장 사방 벽에 매달린 낚싯줄 그네를 타고 있는 것 외에 천장.모서리 등에 숨어있는 인형을 찾아내는 재미가 제법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멸치로 만든 인형. 실제 멸치에 사슴 뿔을 달고 북실북실한 털로 꼬리를 붙이고 철사로 다리를 만들었다.

전시장 기둥은 '멸치 나라' 의 임시 저택이다.

벽 아래 깔린 타월은 이 저택의 정원. 정원에는 여왕 멸치와 남편 멸치, 병정 멸치들이 모여 있다.

외눈박이 멸치부터 눈이 아홉개 달린 멸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작가는 현재 경원대 환경조각과 4학년이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어엿하게 미술계에 데뷔한 것이다.

이력서를 보지 않고 포트폴리오(작품모음집)만 심사하는 이색적 방식을 취한 사루비아다방의 공모에서 그가 선정된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나 특이했기 때문" 이다. 김성희 디렉터는 "누구 것을 베끼거나 무의식중에 누구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전혀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언어를 개발하고 있다는데 높은 점수를 줬다" 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놀이' 에서 비롯됐다.

어렸을 때 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방 안에서 혼자 지점토를 갖고 놀았던 그는 자라면서 유일한 소일거리자 동시에 동무가 돼주었던 인형들에 꾸미고 붙이는 미술적 의미를 더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스스로 몰입돼 즐거움을 느끼며 다듬고 매만졌던 그 '마이크로' 의 세계가 이제 전시장에서 관객을 만나 한층 '매크로' 한 세계로 발전하려는 조짐을 보인다.

발굴 차원이라 해도 갓 스물을 넘긴 젊은 작가의 전시는 아직은 모험일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상업화랑과 미술관 등 제도권 미술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이른바 '대안공간' 의 매력이기도 하다.

11월19일까지. 02-733-0440.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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