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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박정희의 이순신, 김대중의 장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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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일 끝난 본지 창간특집 ‘해상왕 장보고 9회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뜻밖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보고를 띄우기 위해 많은 물밑 작업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숙명적 경쟁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충무공 이순신’을 띄운 것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좋아했다. 장보고 이미지가 딱이었다. 장군이면서도 해상무역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도 처음에는 국민적 영웅으로서 장보고와 이순신을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 간 대치 상황에서 ‘국토방위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던 그는 이순신 장군을 택했다. 더구나 장보고는 삼국사기·삼국유사 등 한국 정사에 반역자로 기록된 것이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개척정신’을 강조했다. 장보고가 억울하게 반역자로 몰렸던 것과 자신이 심지어 ‘빨갱이’로까지 몰렸던 것에 대한 심정적 일체감도 있었다는 게 동교동계 출신 인사의 귀띔이다. 그는 장보고와 함께 광개토대왕도 고려했으나 중국 역사 문제가 걸림돌이 돼 포기했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 인물인 장보고를 고려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 같은 생각을 했던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8년 관계 장관과 재계의 한 인사를 불러 장보고를 재조명하고 대국민 홍보를 할 것을 주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장보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장보고 붐’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 하나로는 힘들다는 의견이 나왔다. 따라서 ‘상도’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소설로 나와 인기를 끈 뒤 방송 드라마로 제작돼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렇게 해서 상도를 쓴 작가 최인호씨를 지원해 장보고 소설 『해신』이 먼저 탄생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을 만났던 재계의 한 인사는 “청와대의 뜻은 모 방송사에 전달돼 드라마 제작에 착수했으나 늦어지면서 정권이 바뀌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는 그 방송사 사장까지 친노 인사로 교체돼 장보고는 다시 관심 밖으로 밀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을 더 좋아해 이런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해신’ 드라마가 나왔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태동시킨 김 전 대통령은 장보고의 이미지를 왜곡시켰다며 불편해했다고 한다. 드라마 특성상 장보고의 개척정신보다 남녀 간 사랑 내용이 더 컸던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때 장보고 띄우기를 했다. 2007년 대선 때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장보고를 앞세웠다.

이렇게 대통령들의 생각에 따라서도 부침하는 ‘장보고의 기구한 운명’은 계속되고 있다.

특별취재팀이 3개월간의 국내외 취재를 하면서 확인한 결과 장보고는 일본에서는 지금도 ‘재물신(적산대명신)’으로 남아 있고, 중국에서는 ‘당나라 장군’이라고 우겼던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이집트 고문서도서관에서 찾아낸 1200년 전에 씌어진 책에서도 장보고의 흔적이 있을 정도였다. 금이 풍부한 나라로 ‘씰라’(신라)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장보고의 손길이 이집트까지 미쳤던 것이다. 이같이 장보고가 해양강국을 개척한 선구자임이 분명한 이상 우리도 글로벌 강국을 만들기 위해 그를 국민적 모델로 삼아야 되지 않을까.

김시래 산업경제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