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용 대책위원장 인터뷰] '노근리 비극'은 민족의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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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키 1m62㎝, 몸무게 53㎏, 쭈글쭈글한 얼굴을 가진 촌로 정은용(鄭殷溶.76)씨. 비록 몸집은 작지만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가매장' 된 진실을 찾기 위해 50년 동안 '인권 대국' 미국을 상대로 싸워온 거인이다.

현장에서 아들.딸을 잃고 살아온 통한의 인생이기도 하다.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대책위' 위원장으로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는 鄭옹을 만나 그의 '한(恨)' 과 '원(願)' 을 들어봤다.

-50년 7월 노근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50년 7월입니다. 미군이 주민들에게 피란시켜 준다며 모이게 한 뒤 비행기 폭격과 기총소사로 양민을 대량으로 죽였으니까요. 7월 26일 점심 무렵부터 29일 새벽까지 약 70시간 동안 벌어진 살상극은 '인간사냥' 이었습니다. 저도 5세.2세의 아들.딸을 비롯해 일가 11명을 잃었고, 집사람은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

-당시 숨진 양민은 얼마나 되는 것으로 파악합니까.

"피란을 떠난 6백여명의 주민 중 4백~5백명은 죽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공식 집계된 사망자는 1백21명입니다. "

-사망자에 대한 추가 신고가 잇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노근리 사건 실상이 보도되면서 전국에서 연락이 옵니다. 오늘은 제주도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대책위에서는 호적을 비롯한 자료나 증언 등 객관적으로 피해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신고를 받고 있습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

-노근리 사건과 관련되는 소설도 쓰셨죠.

"소설보다 현장기록에 가까운 글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사건이 잊혀지고 아는 사람들도 하나 둘 사라져 안타까운 마음에 70세를 넘기면서 4년간 썼습니다. 책속에는 참사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과 체험을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억울해서 썼던 것이 이제는 유력한 자료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책 제목이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인데 여기서 '그대' 는 누구입니까.

"물론 미국이죠. 아이들을 잃고, 부산에서 피란생활 도중 미군부대에서 노역하다 인종차별에 회의를 느껴 품삯도 받지 않고 뛰쳐나와 용두산 위에서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

-구체적으로 미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상을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원혼들의 넋을 달래줄 위령비를 세워달라는 것뿐입니다. 피해배상도 돼야 하지만 배상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잔혹한 인간사냥의 진상이 알려져 지구상에서 다시는 이같은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

-50년 가까이 진상규명 요구에 매달리게 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공분(公憤)입니다. 내 자신이 핏줄을 잃었고 이같은 억울함을 호소조차 하지 못하는 유가족들의 원통함이 컸던 겁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고 마지막으로 유엔 인권위에 제소해 죽을 때까지 진실을 규명할 각오였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정부대책반이 가동됐기 때문에 일단 미국과의 협상과정을 지켜보겠습니다. 12일에 유가족 전체회의가 열립니다. 한국교회협의회 등 여러 단체에서 지원의사를 전해오는데 이들과의 협력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정부를 믿고 진상규명 노력에 적극 협조한다는 계획입니다. "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노근리 사건은 피해자 가족들만의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국군을 한반도에 끌어들여 일어난 비극으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비록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진상을 똑바로 밝혀 다시는 한반도에 외국군을 끌어들이고, 동족들이 총부리를 서로 겨누는 일이 없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저희들의 활동을 애정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

영동〓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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