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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리샤르를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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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성매매를 범죄로 만든 일은 먼저 철학적으로 문제가 된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면,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논리적 근거는 없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성매매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물론 당사자들에겐 아주 큰 이익을 준다. 실은 성범죄의 감소와 같은 긍정적 효과들을 지녔다. 현실적으로, 성매매의 금지는 문제들을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성매매는 성욕의 해결을 위한 거래다. 생명체들의 생식을 돕는 장치이므로, 성욕은 무슨 욕구보다도 강하다. 그런 욕망을 법으로 막으면, 필연적으로 문제들이 나온다.

인류 사회에서 성욕을 해결하는 기구는 결혼이다. 결혼은 멋진 기구지만, 그것이 성욕을 늘 만족스럽게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성욕은 결혼에 맞추어 진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 생식은 20억 년 전에 나타났지만, 인류의 결혼은 아마도 몇만 년 전에 나왔을 것이다. 성적 활동이 왕성한 사람들 모두가 결혼의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지금 초혼이 20대 후반에 이뤄지므로, 일생에서 성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10년 동안, 사람들은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성욕을 해결해야 한다. 지금 그들에게 열린 길들 가운데 사회가 공인한 것은 금욕뿐이다.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이 성인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되는 것이다.

그렇게 결혼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많이 메워주는 것이 성매매다. 당연히, 성매매는 없애기 어렵다. 성매매를 억지로 없애려 시도하면, 그것을 잠복하게 만들 뿐 그다지 줄이지 못한다. 성매매를 줄이려는 정책에서 특히 해로운 것은, 성매매가 나오도록 한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은 없이, 그저 성매매에 대한 벌을 무겁게 하고 유곽을 폐쇄하는 일이다. 그런 조치는 성범죄를 늘리고 성병의 통제를 어렵게 하며 범죄 조직의 터전을 마련해준다. 무엇보다도, 매춘부들의 처지를 어렵게 하니, 성매매가 불법이 되면, 그들은 전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된다.

지금 세계적으로 성매매에 관한 정책은 금지에서 규제로 옮아간다.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는 행위들을 아예 금지해서 문제를 악화시키기보다는 적절히 규제해서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우리 혼자 그런 추세를 거스른다. 성매매와 관련해서 사회가 할 일은 모든 성매매들이 자발적 거래들이며 매춘을 강요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매춘부들을 기업가들로 대접해서 그들이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특히 효과가 클 터이다. 이 방안은 실은 헝가리 경찰이 맨 먼저 제안했다. 성매매를 단속하는 입장에 있고 그래서 성매매의 실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경찰이 그런 제안을 했다는 사실은 음미할 만하다.

성매매를 없애려는 시도가 무모하다는 사실이 뚜렷해지면, 반성도 나온다. 1954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천주교회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유곽들의 영업 재개를 허용했다. 1937년의 유곽 폐쇄가 성매매를 줄이지는 못하면서 성병의 창궐, 성도착증의 확산, 범죄의 증가와 같은 부작용들만 불러왔기 때문이다. 유곽 폐쇄와 매춘 금지 입법을 주도한 프랑스 여성 운동가 마르트 리샤르(Marthe Richard)는 뒤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성매매에 대한 합리적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세력은, 역설적으로, 성매매를 극도로 혐오하고 엄격한 규제를 주장해 온 여성운동권이다. 법을 다루는 국회도, 법을 집행하는 경찰도 문제가 심각한 것을 잘 알지만 여성운동권의 힘이 두려워서 거론하지 못한다. 오직 여성 운동가들만이 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마르트 리샤르가 나올 때가 됐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