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本紙사태에 쏠린 세계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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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 언론단체들과 유력 신문.방송.통신사들이 국세청의 본사 홍석현(洪錫炫)사장 고발에 이은 검찰의 수사착수.소환 사태에 관심을 갖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계신문협회(WAN)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낸 데 이어 어제는 세계 1백여 국가 매스컴의 편집인.중견 언론인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국제언론인협회(IPI)가 金대통령에게 비슷한 서한을 발송했다.

그뿐 아니다. AP와 AFP통신은 서울발로 중앙일보 사태 진행과정과 국제 언론단체의 항의내용을 타전했으며, 미국의 ABC방송, 뉴스위크.월 스트리트 저널과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 등도 사태추이를 보도했다.

세계 언론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가 보낸 항의서한이나 관련 외신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당국은 아직 답변이나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짐작컨대 탈세혐의가 걸린 사안인 만큼 어디까지나 국세청이나 검찰같은 해당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당초 국세청은 '일상적인 업무의 일환으로 스스로 판단해 조사하고 고발했다' 고 했고 검찰은 '고발된 사실을 엄정하게 수사할 뿐' 이라고 다짐한 이번 사건이 어째서 해외 언론단체에는 '발행인에 대한 징벌행위' 나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 로 비쳐졌는지 당국은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한 해외의 시각과 의구심은 우리 당국의 설명과 달리 '법의 잣대' 가 아닌 '권력의 잣대' 가 휘둘려지고 있다는 데 쏠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제도 말했듯 언론사 사장이라고 해서 법 앞에 예외가 될 수 없으며 특혜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당연히 검찰수사도 엄정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세계신문협회와 국제언론인협회가 항의서한에서 본지(本紙)의 비판적인 보도태도가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당국의 '표적수사' 또는 '감정(rancour)' 개입 가능성까지 우려한 것은 사태의 전말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우리는 본지에 이미 상당기간 전부터 인사권이나 지면내용을 둘러싼 권력측의 유.무형의 압력이 가해져 온 사실과 이번 사태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항의서한들이 '지난 97년의 대통령선거 당시 金대통령의 경쟁상대 후보를 지지했던' 본지 보도태도가 이번 사태의 원인(遠因)이라고 진단한 것도 사태를 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이 단순한 탈세사건은 아니라는 심증을 깔고 있다고 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 시점에서 본지 사태가 권력에 의한 언론탄압의 최신 사례로 국제사회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체가 정부당국은 물론이겠거니와 본지와 독자.국민으로서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사태라고 판단한다.

크게 보자면 나라 전체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경위 여하를 떠나 독자 여러분께 재삼 송구스러움을 전하며,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려는 본지의 노력에 이해와 지지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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