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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베트남과 동티모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동티모르 파병방침이 떠오르면서 베트남전 참전의 기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시 일어나고 있다.

베트남파병의 도덕적 문제점에 대한 반성이 장본인이었던 미국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더 더뎠던 것은 반공을 '국시' 로 내거는 사상적 경직성과 군부세력의 독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적 베트남과 국교를 맺고 경제교류를 키워가고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의 참전이 베트남인을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평화' 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정부는 선전했고 어린이들도 노래했다.

그러나 사실은 '국익' 을 위한 파병임을 감추려는 사람도 없었다.

경제개발에 대한 '월남특수' 의 공헌은 베트남에서 희생된 사람들, 참혹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참전의 의미였다.

베트남파병이 국가경제에 가져온 혜택에도 장기적으로 보면 의문이 있다.

1960년 이후 30년간 대만.말레이시아.싱가포르와 한국의 경제성장을 비교해 보면 전체 평균성장률은 비슷하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성장률이 오르내리는 요동의 폭이 다른 나라들보다 컸다.

작위적 조건에 의한 일시적 호황이 장기적 성장효과로 이어지기보다 오히려 경제구조의 불안정성을 몰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나오는 것이다.

동티모르 파병에 얄팍한 '국익' 이 거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우선 다행이다.

그러나 이 군사개입이 진정 동티모르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베트남의 경험을 가진 우리로서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은 프랑스에서 독립하려는 참에 미국이 반공정권을 급조해 쪼개놓은 나라였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베트남 민족주의의 대세에 맞서 싸운 것이었다.

동티모르는 수백년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로 있는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로 있었고, 독립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무력침공을 받은 것이니 다국적군이 민족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의 장래다.

수하르토 축출 이후 인도네시아에는 정치적 지도력이 크게 약화돼 있다.

동티모르에서 민병대의 만행과 군부의 방관은 하비비 정부의 권위가 통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종족과 종교, 문화가 얽혀 있는 나라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다는 공동배경만으로 한 나라를 이루고 있지만 잠재적으로 큰 원심력을 가진 나라다.

벌써 분리독립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순조로운 변화 방향 모색을 돕는 이웃으로서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이번 파병의 도덕적 정당성을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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