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인도여행' 번역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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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전생의 본향 (本鄕) 이 중국.인도 사이 히말라야의 어느 산중 (山中) 이라는 예감 속에서 살았던 헤르만 헤세 (1877~1962) 의 '인도 여행' (이인웅.백인옥 옮김, 푸른숲.1만5천원) 이 출간됐다.

이 책은 1911년 하반기 헤세의 여행단상을 담아 독일 베를린에서 출판됐던 '인도에서' (1913년) 의 여행일기와 인도 관련 에세이 몇편을 묶은 것. "나는 배 난간에 기대어 텅 빈 수평선이 빚어내는 아득함과 슬픔에 흠뻑 빠져 있었다. 섬뜩하리만치 무한대로 펼쳐진 거무스레하고 둥근 바다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

이런 감상으로 시작된 '동쪽으로의 방랑' 은 실론섬 (지금의 스리랑카) 과 싱가포르, 그리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으로 이어졌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활동을 벌였고 어머니가 성장했던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실제 체험으로 대비시킬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하지만 헤세는 식사와 위생 상태에 대한 적응 실패로 정작 인도 본토를 밟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에게 다가선 '동쪽 세계' 는 신비로울 뿐, 호감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까 책 제목의 '인도' 는 '동양' 의 상징이었던 셈. "이제는 많은 것에 익숙해졌다. 싱가포르.콜롬보의 무더위와 모기떼에 적응이 됐고 계속되는 설사며 대장염을 실론섬에서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눈동자에 슬픈 표정을 담아 구걸하는 소녀들을 지나치는 법도 배웠다. 성자처럼 보이는 백발 노인의 차가운 시선을 뿌리치는 방법도 익혔다. 그리고 온갖 장사꾼과 거지떼들을 거친 말로 자제시킬 줄도 알게 됐다. "

또 지금으로부터 88년전 오늘 (9월16일) , 그는 말레이시아 인근을 지나치며 이런 일기를 남겼다.

"등대만 홀로 외롭다. 섬들은 거칠고 팍팍하다. 반쯤 벗은 채로 서성대는 중국인들이 우스꽝스럽다. " 그 가운데서도 그는 천진난만하게 삶을 꾸려가는 인간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먼 조상을 방문한 것 같은 체험, 또 동화를 따라 인류의 유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체험이었다. 이후 그 무언가가 내 가까이로 다가왔다. 동양정신에 대한 경외감이 남아 맴돌았다. " 이처럼 헤세의 방랑은 지리적이면서 정신적이었다.

'수레바퀴 밑에서' (1906년작 장편소설) 절망하던 헤세는 '싯다르타' (1922년) '유리알 유희' (1943년) 처럼 되살아났다.

유럽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살았던 그에겐 동양의 발견이 바로 '본향 회귀' 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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