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터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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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33면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의 귀천을 따지는 시대착오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거 동양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서양에도 비슷한 관념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르네상스 때까지 거의 2000년에 걸쳐서다. 예컨대 플루타크의 『전기』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집안 좋은 젊은이들은 제우스상을 봐도 조각가인 페이디아스가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작품이 우리를 즐겁게 해줘도 그 작가가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손을 놀리거나 몸을 움직여 먹고사는 것보다는 역시 “에헴” 하며 으스대는 게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근대 이전엔 수공업자는 물론이고 예술가나 의사도 천시받았다. 르네상스 초기만 해도 화가가 자기 취향에 따라 만든 작품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구도, 양식, 안료,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두 길드나 교회의 지침에 따라야 했다. 그 정도로 화가는 못 배운 천한 칠쟁이 취급을 당했다. 그 때문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되겠다고 하자 뜯어말리는 부친과 형에게 숱하게 얻어터졌다. 명망가 집안에서 칠쟁이가 나왔다는 건 가문의 수치였다.

지금은 선망의 직업인 의사도 중세 유럽에선 사회적 신분이 요즘과 무척 달랐다. 손에 피고름 묻혀가며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천한 의료직인, 대학에서 이론 공부에 몰두한 건 지체 높은 의사였다. 라틴어로 전자를 ‘medicus’, 후자를 ‘physicus’라 했다. 후자는 본래 자연철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게 의사를 지칭할 때는 ‘자연철학을 배운 학자로서의 의사’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이들은 환자 진료엔 직접 나서지 않았다. 임상은 천한 의료직인, ‘medicus’의 몫이었다.

오늘날 외과를 뜻하는 영어 ‘surgery’나 프랑스·독일어의 ‘chirurgie’는 원래 수작업(manuum operatio)을 의미했다. 이를 담당하던 이들은 의사로 인정받질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기량을 쌓았다. 그런 배경 때문에 경험주의자라는 뜻의 ‘empiric’에는 학식 없이 몸으로 때우면서 경험에만 의존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지금도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emipiric’에 ‘돌팔이 의사’라는 뜻이 남아 중세의 잔재를 보여준다.

그러다 17세기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인식이 확 달라졌다. 손과 몸을 놀려 연구하고 습득해야 하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눈 뜬 것이다. 산업의 상징인 ‘manufacture’도 라틴어 manus(손)와 facere(만들다)가 합쳐져 나왔다. 손의 경멸적 의미가 많이 탈색된 셈이다. 서양이 근대화에 먼저 성공한 것도 이 같은 인식의 전환 덕분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뒤늦게나마 우리 사회에서도 손 놀리고 몸 쓰는 일이 중요하다는 실용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기술명장을 육성할 마이스터 고등학교 21곳이 내년 3월 개교하는 게 바로 그런 사례다. 이달에 첫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하니, 10여 년쯤 뒤 그 졸업생들이 대학 나온 책상물림을 압도하는 모습,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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