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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면 깎아드려요' 자영업자 국민연금 '흥정'벌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S대 시간강사 權모 (30.경기도 성남시) 씨는 9일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전화통보를 받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수입이 주당 6시간 강의하고 버는 월 32만여원인데 공단측이 "실질소득에 비해 신고소득이 낮은 것 같다" 며 "1만2백원인 연금보험료를 2만5천원으로 올리겠다" 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權씨가 "보험료를 더 내기는커녕 생계비를 보조받아야 할 형편" 이라고 항의했지만 "못내겠으면 납부유예 신청을 하라" 는 답변을 들었다.

공단측과 옥신각신한 끝에 權씨의 월 연금보험료는 1만2천원으로 결정됐다.

저소득 직장인에게 거둬들인 보험료가 고소득 자영업자에게 흘러들어가는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벌이고 있는 지역가입자 신고소득 상향조정 작업이 '주먹구구식' 으로 이뤄져 원성을 사고 있다.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자의 신고소득을 높이겠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실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중산층 이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가 하면 창구직원들에 대한 사전교육 부족으로 민원을 유발하고 있다.

◇ 사례 = 경기도 고양시에서 찌개전문점을 하는 姜모 (40.경기도 의정부시) 씨는 지난 주말 연금공단으로부터 "다음달부터 보험료를 2만9천여원에서 5만원 이상으로 올리겠다" 는 연락을 받았다.

姜씨는 "6월 연금 가입 당시보다 물가가 올라 수입이 줄었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공단직원이 '상부 지시니 좀 도와달라' 고 오히려 하소연하면서 4만5천원을 내라고 했다" 며 어이없어 했다.

건설업 일용직 근로자 許모 (45.서울시 노원구) 씨도 "지난 8일 연금보험료를 지금까지 2만9천여원에서 6만8천여원으로 올리겠다고 해 '저소득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겠다' 고 하자 '인상률을 80% 적용, 5만5천원으로 낮춰주겠다' 며 흥정을 걸어왔다" 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정책이 구체적인 근거나 기준도 없이 세일즈맨 판촉활동처럼 추진돼서야 되겠느냐" 고 분통을 터뜨렸다.

◇ 문제점 = 공단측은 "7천여명의 홍보 요원을 '길라잡이' 로 동원해 신고소득을 높이는 과정에서 일부 요원들이 가입자에게 충분한 배경설명을 하지 않아 마찰이 빚어진 것" 이라며 "철저한 교육을 통해 민원 소지를 없애겠다" 고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자영자의 실질소득 파악이 되지 않는데 있다.

현재 공단이 신고소득 상향작업에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 공적자료는 종합과세소득 자료. 하지만 이 자료는 97년 소득을 98년에 신고한 내역으로 98~99년 급격한 경기변동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 산하 자영자소득파악위 박승 (朴昇) 위원장은 "올해 안에 과세자료 수집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적어도 3~4년 동안은 자영자에 대한 실소득 파악이 어렵다" 며 "과도기적인 사회보험 재정관리방안을 마련해 저소득층의 상대적 불이익을 막아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민원소지를 없애기 위해 신고소득 상향조정 대상을 5개등급 가입자중 고소득 직종으로 분류된 1, 2등급에 초점을 맞추도록 공단측에 지침을 시달하겠다" 고 말했다.

권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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