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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풍같은 사건 다시 없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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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권이 세칭 세풍 (稅風) 사건 수사를 사실상 중지하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검찰도 다음주 중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 여야관계의 암초가 돼온 이 사건이 일단락돼 정국정상화의 길이 열리는 조짐에는 반가워하면서도 이 사건이 이런 식으로 끝을 맺는 데는 의아한 느낌 또한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수사 진행과정에서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비도덕성, 요원해 보이는 검찰의 중립성 문제 등을 보여온 데다 수사 중지결정도 검찰 아닌 여권에서 먼저 방침이 정해진 이상한 모양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 만 1년간의 세풍사건 수사과정에서 확연해진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와 사건, 정치와 법이 수시로 뒤범벅되는 한심한 풍토다.

사건 초기부터 정치권에서 갖가지 '리스트' 들이 흘러나오고 '방탄국회' 시비가 계속됐으며, 그 와중에 검찰권은 왜소해지고 실종된 느낌마저 주었다.

이번 수사 중지결정도 여당 간부가 당의 뜻을 청와대에 건의하고 이를 청와대 당국자가 다시 검찰에 '통보' 했다고 하니 수사 주체가 검찰인지 정치권인지 모를 지경이다.

검찰도 이 사건에 관한 한 핑계댈 처지가 못된다.

사건의 혐의내용에 국한해 엄정히 수사하면 될 것을 사건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야당 후원회원 계좌를 광범위하게 뒤져 정치사찰이라는 반발을 자초했다.

더구나 정당으로서는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돈의 용처 (用處) 까지 조사한 것은 야당 주장대로 "수사를 핑계로 안방까지 뒤졌다" 는 의심을 받기에 꼭 알맞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세풍같은 사건은 다시는 없어야 하며, 아울러 정치권이 앞장서 검찰권을 훼손하고 검찰은 검찰대로 권한을 남용하는 인상을 주는 식의 수사행태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한나라당 역시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세풍자금 유입에 대해 한차례 사과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의 일단락을 계기로 정치적.도덕적으로 다시 한번 뼈저리게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여권의 이번 조치로 그동안 여야관계를 가로막던 가장 큰 암초가 제거된 것은 어쨌든 잘된 일이다.

이제부터 정치권이 할 일은 원만한 여야관계를 조속히 회복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가령 여야 총재회담 같은 자리도 마련해볼 만하다고 본다.

여야는 특히 세풍사건의 교훈을 되새기는 뜻에서도 정경유착 근절, 돈 안드는 정치 구현 등을 위한 정치개혁에 합심해 나서야 할 것이다.

검찰 중립성 확보 문제를 여권이 좀더 위기의식을 갖고 심각하게 개선책을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건의 중대성이나 파장을 보더라도 세풍사건은 여야와 검찰 모두가 쉽게 망각해버릴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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