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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레저] 발칙한 호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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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입구에서.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레스토랑 ‘키친’의 닉, 피트니스 센터의 매니저 지미, 우바의 크리스탈, 웰컴 앰배서더 휴, 레이첼.

호텔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도어맨의 기다란 모자와 제비꼬리 재킷. 한결같이 단정하게 빗어넘긴 여직원의 쪽머리. 큰 소리로 웃고 떠들다간 퇴장 명령이라도 받을 것 같은 레스토랑의 묵직한 분위기.

이제 이런 고정관념을 통째로 거부하는 호텔이 여기 있다. 호텔 W. 이름부터 도발적이다. 전 세계 레저관광업계에 숱한 화제를 낳은 호텔 W가 지난 20일 서울에 상륙했다. 세계에서 19번째, 아시아에서 첫번째다.W의 오픈은 새 호텔 하나가 영업을 시작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적인 여행잡지 '트래블 & 레저'한국판 김은조 편집장의 설명이다. "기존의 호텔 문화는 유럽의 계급 문화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W는 다르다. W는 미국 호텔이다.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미국인의 가치가 W엔 고스란히 배어 있다." W의 문화는 복잡한 절차를 싫어하고 남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는 요즘 젊은이의 코드와 일치한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 레저문화에 얼마만한 파장을 일으킬지 호텔 W를 경험하고 왔다. 여기에서 '경험'이라고 쓴 건 W에선 묵는다(stay)고 하지 않고 경험한다(experience)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Wooow : 첫 인상부터 와우!

호텔 앞에 도착했다. 한쪽 귀에 마이크 달린 이어폰을 낀 아가씨가 살짝 눈인사를 건넨다. 몸에 달라붙는 연녹색 티셔츠 차림. 이름을 물었더니 "레이첼"이라고 답한다(여기 직원들은 모두 영어 이름으로 불린다. 말단 직원도 총지배인에게 '마틴'이라고 부른다.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호텔의 도어맨이 레이첼의 역할이다. 다른 호텔엔 여성 도어맨이 없다. 여기선 '웰컴 앰배서더'(환영 대사쯤이면 맞겠다)라고 불린다. 레이첼 옆에 더벅머리를 하고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채 서있는 청년은 '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호텔 안으로 들어선다. 와우(Wow)! 쿵쾅대는 음악에 우선 놀란다. 하우스 뮤직(집에서 파티를 열 때 어울리는 가벼운 리듬의 댄스 음악) 계열의 팝송이다. 로비 구석엔 실제 DJ 부스도 있다. 오후 8시부터 새벽까지 흥겨운 파티가 열린다. 이 정도면 호텔보다 나이트 클럽에 가깝겠다. 흥청망청 춤판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주말마다 여느 호텔 레스토랑에서 연출되는 맞선 풍경은 없을 것 같다. 분위기 좋다는 어느 카페에 들어온 기분이다. 조명은 은은했다가 때때로 화려해진다. 로비는 갖가지 형태의 소파로 꽉 찼다(W에선 로비를 리빙룸, 즉 거실이라고 부른다). 평상처럼 널찍한 소파 위엔 남녀가 보드 게임에 열중하고, 한 손에 병맥주를 든 몇몇은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든다. 다리를 쭉 펴고 앉을 수 있는 소파엔 한 청년이 깊숙이 박혀 책을 읽는다. 여염집의 거실 같은 분위기. 왜 로비를 리빙룸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한동안 서성이다 머리까지 폭 파묻히는 원형 의자에 앉았다.

***Woops : 놀라게 하는 직원들

한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몸에 착 달라붙는 미색 티셔츠엔 W를 형상화한 꽃무늬가 박혀 있고, 짧은 가죽 반바지와 올 굵은 망사스타킹,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 차림이다. 파마 머리는 풍성하게 부풀려 있다. "유니폼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탈(27). 맡은 일은 1층 리빙룸의 바 '우바'(Woobar)의 팀 리더다. 쉽게 말하자면 선임 서빙 종업원. 짧은 인터뷰를 했다. 이내 속으로 뜨끔했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Woops(욱)!'. 놀기만 좋아하는 속 없는 젊은이인 줄 알았더니 미 미시간 주립대 경영학 석사다. 이전 직장은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 '베인&컴퍼니'. 연봉을 물었다. "예전 직장의 절반쯤…." "그런데 왜 여기서?" "W이니까요." "집에서 반대가 심했을 텐데?"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서빙이 원하는 일인가요?" "W이니까요."

직원의 신상 명세를 알아봤다. 200여명의 직원(여기선 탤런트라고 한다)을 뽑는데 무려 4000여명이 지원했단다. 채용 기준은 얼마나 W에 적합하냐는 것. 호텔 근무 경험자는 외려 적었다.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학력은 대부분 대졸 이상. 호텔 앞에서 만난 레이첼은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휴는 영국에서 6년을 살다온 호텔경영학 전공자다.

W 매니어의 극성스러운 예는 단연 마케팅 이사의 비서 그레이스(28)다. 그는 줄리아드 음대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뉴욕대학에서 석사를 마쳤다. 이후 뉴욕의 링컨 센터와 서울의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다. 지금 연봉은 정확히 이전의 절반 수준. 그가 전한 직원 채용 인터뷰에서의 일화다.

"전 직장에 있을 때 외국 패션 잡지에 누드 모델로 나간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주위 시선이 안 좋더라고요. 난 전혀 꺼릴 것 없는데. 인터뷰에서 그 얘길 꺼냈더니 너무 좋아했어요. 총지배인 마틴이 'W가 찾는 인재가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Witty : 벽화가 변기냐고?

▶ 남자 화장실

화장실에 들렀다. 아뿔싸! 소변기가 안 보인다. 왼쪽 벽을 타고 물이 흐른다. 여긴가? 고속도 휴게소 화장실에 이런 거 비슷한 게 있긴 하다. 하지만 바지 지퍼를 내릴 용기는 좀체 들지 않는다. 물이 흐르는 벽면엔 화려한 영상이 쉼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에 슬쩍 '쉬'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대안은 없다.

W엔 재치가 번득이는(witty) 소품으로 가득하다. 리빙룸 왼쪽 벽면의 설치 예술은 가장 인기가 높다. 사람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수백개의 조그만 나무 조각이 그의 윤곽을 재현해낸다. 나무 조각 하나하나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조작된다고.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객실이 있는가 하면 욕조가 침대와 나란히 누워있는 객실도 있다. 호텔 리무진 서비스로 나오는 승용차는 빨간색 스포츠카다.

총지배인 마틴 비 존스에게 W를 간단히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W는 모든 이를 환영하진 않는다. '무슨 호텔이 이래?'라며 불평하는 손님도 있다. 개의치 않는다. W는 W를 이해하고 W와 함께 놀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W를 경험하는 사람이 W의 모습을 만든다."

***W호텔은 : 무엇이나 언제나 척척

▶ 엘리베이터 내부

W호텔은 6성(星) 호텔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초호화판이란 의미다. 하지만 W호텔은 "단 한번도 우리가 별 여섯개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되레 W호텔은 집처럼 편안하고 스스럼 없는 분위기가 W의 본래 의미에 가깝다고 말한다. 실제로 W는 호화판 일색이지는 않다. 1000원짜리 머핀, 500원짜리 초콜릿도 있다. 우바의 칵테일은 1만원대다. 피트니스 센터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1회 6만원. 대신 방값이 비싸다. 일반객실 기준 40만 ~ 50만원대다. 10월 말까지 오픈 기념 할인 행사를 한다. 그래도 30만원대다.

W는 분명 특이하다. 재치 넘치는 시설이 그렇고, 직원 복장이 그렇고, 로비를 리빙룸이라고 부르는 그들만의 언어가 그렇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레스토랑 '나무'와 '키친'의 메뉴 대부분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렵다. 주방장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이다. W는 특유의 서비스로도 유명하다. 객실 전화기엔 '무엇이나 언제나(Whatever Whenever)'단추가 있다. 언제라도 단추만 누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 며칠 전엔 손님의 부탁으로 한밤중에 객실 바닥에 장미꽃잎을 장판처럼 깔기도 했단다. 공식 이름은 W 서울 워커힐. 미국의 호텔 체인 스타우드사와 서울 워커힐 호텔이 공동 투자했다. 광장동 워커힐 호텔 옆에 있다. 02-450-4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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