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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목조문화재 '해충경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전국의 국보.보물급 등 목조 (木造) 문화재들이 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와 가루나무좀. 왕바구미 등 해충 피해와 관리소홀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어 문화재 당국의 방제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본사 기획취재팀이 김기주 (金基柱.한국기술교육대.건축사). 박현철 (朴賢哲.밀양대. 흰개미 생태) 교수와 조사팀을 구성, 지난달 말부터 15일 동안 국보.보물급 등 전국의 목조 문화재 69개소와 이들 문화재 근처의 오래된 목조 건물 14개소 등 총 83개소를 현장 점검한 결과 국보 13호 무위사 극락보전 (전남 강진) 등 41개소가 흰개미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를 본 문화재는 건물을 받치는 목재들이 약해져 보물 826호 귀신사 대적광전 (전북 김제) 은 기둥이 기울고 건물이 비틀렸으며 벽에 금이 가는 등 무너질 위험에 직면했다.

또 국보 19호 부석사 조사당 (경북 영주) 도 건물이 왼쪽으로 기우는 등 다수 문화재에 대해 수리 및 보존 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강릉 객사문 (국보 51호) 과 개암사 대웅전 (보물 292호.전북 부안).대흥사 천불전 (유형문화재.전남 해남) 등은 흰개미 피해로 기둥이 부식돼 손으로 건드려도 부서질 정도였다.

보물 41호 철제 여래좌상이 있는 실상사 약사전 (전북 남원) 은 흰개미 피해뿐 아니라 빗물 누수로 건물 상층부가 썩어 대들보를 버팀목으로 받쳤고, 통도사 약사전 (유형문화재.경남 양산). 선암사 대웅전 (유형문화재.전남 순천) 등 많은 문화재가 흰개미 피해로 기둥과 주춧돌 사이에 손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생긴 상태다.

흰개미는 1~2년 안에 지름 50㎝, 높이 3m정도의 기둥을 완전히 쏠아 결국에는 건물이 무너질 정도로 목조 문화재에 치명적이다.

무위사 극락보전.법주사 대웅전 (보물 915호.충북 보은).실상사 극락전 (유형문화재.전남 순천) 등은 가루나무좀이 슬어 갉아먹는 과정에서 생긴 누런 나무 가루가 문틀에 2~3㎜ 두께로 쌓였다.

또 왕바구미 등 해충 피해로 산탄총을 맞은 듯한 구멍투성이 기둥들도 수없이 발견됐다.

특히 흰개미들은 대들보 위쪽 등 잘 보이지 않는 지붕 구조물을 갉아먹을 가능성이 커 시급한 조사가 요구된다.

金교수는 "대들보가 공격당하면 금세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실제 현장답사 과정에서 봉정사 대웅전 (보물 55호.경북 안동) 뒤쪽에 놓인 6m 길이의 옛 대들보에서 약 3m 정도를 흰개미가 파먹은 것이 발견됐다.

봉정사측에 따르면 이 대들보는 74년 대웅전 수리 때 새 것으로 교체한 뒤 이곳에 놓아둔 것이다.

朴교수는 "교체 전 대들보가 건물에 설치됐을 때 공격한 것이 분명하다" 고 판단했다.

목조 문화재들의 훼손은 본지가 입수한 산림청의 비공개 자료 '98년도 임업연구사업보고서' 에서도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98년 4월부터 10월까지 산림청은 전국 60개소의 목조 문화재를 조사했으며, 그중 33개소가 흰개미 피해를 보았고 22개소에 가루나무좀이 슬었으며 25개소에서는 목재가 썩고 있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등 문화재 당국은 흰개미 피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 강정태 (姜正泰) 유형문화재과장은 "98년 4월 해인사에서 흰개미가 발견된 뒤 일선 문화재관리를 맡은 시.도에 지역 문화재의 흰개미 피해를 유의해 살피라고 지시했으나 피해 보고를 받은 바 없다" 고 말했다.

박언곤 (朴彦坤.홍익대.문화재전문위원) 교수는 "지자체에 전문가가 없어 흰개미 등의 훼손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고종관.이영기.김국진.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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