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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국의 군사퍼레이드와 동아시아 안보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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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증강된 국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싶은 국가지도자들에게 열병식을 포함한 군사퍼레이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정예 병력과 첨단화된 무기체계를 내외에 보임으로써 대내적으로는 국가권력의 존엄과 정당성을 재확인받을 수 있고, 대외적으로도 국가의 발전된 모습을 과시할 수 있다.

지난 10월 1일 건국 60주년을 맞아 베이징에서 거행된 중국의 군사퍼레이드에서는 50여 종에 달하는 첨단의 무기체계와 육·해·공군 및 제2포병 등 정예병력들의 군사력이 유감없이 과시되었다. 사정거리 1만200㎞에 달하는 대륙간탄도탄 둥펑(東風) 31A 등이 최초로 공개되었고 순항미사일 장젠(長劍)10, 조기경보통제기, 공중급유기, 무인정찰기 등 최신예 자국산 무기체계들이 선을 보였다. 이러한 군사력의 공개를 통해 중국은 티베트와 위구르 등 소수민족의 분리 움직임을 견제하면서 국내적 결속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도 증강된 국가위상을 과시하는 데 성공을 거둔 듯하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 등으로부터 불투명성을 지적받으면서도 지속적으로 국방비를 증액시켜 왔다. 그 결과 1990년대 중후반에는 대만에도 미치지 못하였던 국방비 수준이 이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인 9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막대한 국방비를 기반으로 중국은 재래식 전력뿐만 아니라 핵무기·항공모함·우주무기체계 등 첨단 전략무기체계 구축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공개된 무기체계 이외에도 중국은 이미 핵탄두 200여 발, 사정거리가 8000㎞를 넘는 대륙간탄도탄 46기 등 미사일 800여 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더해 2011년까지 항법위성 35기를 발사하여 중국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인 베이더우(北斗)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며, 2015년까지 재래식 항공모함 2척, 2020년까지는 6만t급 원자력 항모 2척을 보유하려고 한다.

이 같은 군사력 증강 추세가 향후 동아시아 및 글로벌 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미국 등에서는 이미 중국의 군사적 위협론이 대두된 지 오래다. 미국을 대체할 중국 패권으로의 세력 전이론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중국 내부에서도 경제에서뿐만 아니라 군사 면에서도 G2가 될 수 있다는 논의가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개별 국가가 추구하는 군사력 증강의 목표 설정은 각국의 주권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타국에서 관여하기에 용이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중국 지도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표명한 대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평화발전의 전략에 따라 세력을 확장하거나 지역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따라 동아시아 지역 내에 군비경쟁의 양상이 노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올해 1월에 공개한 국방백서에서 핵무기 미보유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핵무기 선제 불사용의 원칙을 거듭 확인한 점,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에 반대하는 정책을 명시한 점 등을 평가하고 싶다. 군사퍼레이드가 행해지던 당일에 신화사 통신이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전수방위의 원칙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점도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차제에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 및 안보 분야에서 보다 다양한 협력을 위한 논의를 개시하는 것은 어떨까. 미국과 러시아도 올해 말 종료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대체할 핵군축 관련 신조약 체결을 위해 상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0월 10일에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 등이 그러한 논의 제기를 위한 생산적인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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