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재, 이젠 복구와 지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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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집중호우와 태풍은 지나갔지만 수해지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진흙투성이의 집, 쓰레기 천지에 진동하는 악취, 매몰되거나 쓰러진 농작물 앞에서 수재민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할 형편이라고 한다.

황폐화한 수재현장의 모습을 멀리서 보는 우리의 심정도 막막한데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긴 이재민들이야 오죽하랴. 아마도 수개월은 족히 걸릴 복구에 앞서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생존조건 확보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입고 잠자는 일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

게다가 수인성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그런데도 자치단체나 정부는 기초적인 구호활동마저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체나 시민들로부터 구호품을 접수하고도 필요 물품 파악 등 처리절차에 얽매여 지급이 지연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나중에 감사대상이 된다며 구호품을 창고에 쌓아놓고만 있다고 한다.

이런 비상사태에도 탁상행정이고 면피우선이라니 한심한 일이다.

당국은 수재민들이 스스로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생필품 조달에 나서고 있는 현실을 바로 보고 효율적인 구호체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수재민들의 재기 (再起)에는 당국의 행정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일반 시민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특히 당장의 일상생활이 어렵고 주변 정돈이 시급한 이때야말로 이웃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수재민들에게는 지금 물이 찼던 집안에서 흙더미를 걷어내고 가재도구를 청소.정리해야 하는 등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

수재민돕기 성금 모금을 통해 당국의 복구를 돕는 것도 필요하지만 직접적인 일손지원이나 물품지원은 수재민들의 의욕을 돋우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관 (官) 과 군 (軍) 의 손길은 도로.수도.전기.통신.수로 등을 복구하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므로 시민들의 자원봉사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마침 방학 중인 자녀들과 함께 수해지역을 찾아 복구의 일손을 돕는 것도 매우 뜻있는 일이 될 것으로 믿는다.

평소 입지 않는 옷가지를 말끔히 손질해 가져가거나 밑반찬 등을 준비한다면 수재민들에게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다.

지난 96년 연천 수재때부터 시작돼 사회운동으로 자리잡은 수해복구 자원봉사의 발길이 이번에도 활발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

수재민들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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