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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의 보고 포르투갈 Algarv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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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의 남단, 유럽과 아프리카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해협 지브롤터, 길이 4km, 너비 1.2km의 반도는 해발고도 30m의 석회암 암봉이 5개나 이어지며 절벽과 급사면으로 자연적 철옹성을 이루는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 분명 스페인 영토에 위치하고 있고 스페인이 줄기차게 영토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1704년 왕위 계승 전쟁에 개입한 영국이 전략적 요충지로 지브롤터를 차지한 후 지금까지 영국 직할 식민지로 남아있는 지역이다. 국민투표에서도 지브롤터인은 98%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로 영국령에 계속 남아있기를 원하고 있어 앞으로도 영토반환의 가능성이 없는 지브롤터. 이 곳이 영국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린 부푼 가슴을 안고 지브롤터를 여정에 넣었었다. 골프에 살짝 미친 영국인들이 분명 지브롤터 바위 절벽을 어떻게든 어루만져 골프 코스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브롤터로 가는 길목에 들른 포르투갈 남단의 알가르베(Algarve)에서 스스로 눌러앉고 말았다. 뜻하지 않았던 곳에서 우린 골프의 천국을 만났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수난시기를 겪은 후 골프도 여행도 시큰둥해진 상황에서 기대 없이 포르투갈에 입성했다. 유럽 여정의 끝이 보이던 무렵이라 오직 여행을 계획대로 마무리짓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우린 유럽 각 국가별 Best Golf Course 목록과 지도 한 권을 들고 포부도 당당하게 유럽 대륙에 상륙했었다. 그러고도 욕심은 많아 가급적 각 국가별 베스트 코스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척에 깔린 주변 골프장들을 애써 외면하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명문 코스들을 찾아다니는 작업은 지나치게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고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쉬워도 너무 쉬웠다. 포르투갈 Top10 골프장들은 옹기종기 이쁘게도 모여 있었다. 포르투갈의 최남단,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며 최상의 기후를 만들어내는 알가르베(Algarve)지역.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선선한 포르투갈 최고의 휴양지이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의 하나라는 이곳은 골프의 천국이었다. 포르투갈 전체 골프장의 반 이상이 이 지역에 몰려 있었고, 하나같이 순위권의 골프장들이었다. 최대 규모의 골프대회 포르투갈 오픈 또한 최소한 2년에 한 번 씩은 이곳에서 개최되는 것이 거의 암묵적인 합의사항이라고 했다. 애써 네비게이션을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하릴없이 리조트 단지를 돌다보면 골프 코스들이 튀어나왔다. 다만 영국인들이 휴양지로 선호하는 곳이라 물가가 거의 런던수준이었다.

첫날 랭킹 1위의 San Lorenzo GC에 이어 Vale do Lobo를 찾아갔다. Royal 코스와 Ocean 코스로 나뉘어진 36홀 Vale do Lobo는 각 코스가 3, 4위권에 랭크된 골프장이다. Vale do Lobo는 알가르베 리조트 개발 초기에 오픈한 골프장으로 1968년 영국의 헨리 코튼(Henry Cotton)이 쌀 경작지에 토목 공사를 하고 30만 그루의 나무를 식재해 아름다운 골프장으로 변모시켰다. 헨리 코튼이 설계한 홀을 기반으로 1997년 미국의 설계가 Rocky Roquemore가 부분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헨리 코튼의 영국식 홀과 새로운 미국식 홀이 공존하는 골프클럽이다.

우린 단체팀 부킹이 꽉찬 Ocean 코스를 피해 Royal 코스로 향했다. Royal 코스(6.050m)는 전반적으로 기복이 있는 페어웨이에 소나무 숲과 각종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었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곳이라 잔디 생육 환경도 건조한 지중해 쪽의 골프장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윤기를 품은 초록색과 발 밑을 받쳐주는 잔디의 탄력을 느껴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싶게 반가웠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에 위치한 Royal 코스에서는 아일랜드 홀에 가까운 9번 홀과 낭떠러지 그린의 16번 홀이 시그니쳐 홀로 꼽힌다. 특히 16번 홀(파3, 224yd)은 알가르베 골프의 상징과도 같은 홀이다.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건너 커다란 벙커가 지키고 있는 그린에 한 번에 안착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더욱이 맞바람이 불 때는 더욱 악명 높아진다.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샷을 경험할 수 있는 홀, 보기만 기록해도 당당하게 이 홀을 떠날 수 있다는 매니저의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맞바람을 의식해 두 클럽이나 크게 잡았던 동반자의 볼이 그린 왼쪽 끝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의식적으로 오른쪽을 겨냥했는데 내 볼은 턱없이 짧은 거리로 낭떠러지 행이 되고 말았다. 둘 다 양파를 기록한 스코어 카드를 들고 씁쓸히 홀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가르베를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지천에 널린 골프장들은 어딜 가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없는 최고의 코스들이었다. 결국 지브롤터를 포기하고 각종 브로셔에 등장하는 그림같은 코스들을 조금 더 경험하기로 했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