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수난시기를 겪은 후 골프도 여행도 시큰둥해진 상황에서 기대 없이 포르투갈에 입성했다. 유럽 여정의 끝이 보이던 무렵이라 오직 여행을 계획대로 마무리짓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우린 유럽 각 국가별 Best Golf Course 목록과 지도 한 권을 들고 포부도 당당하게 유럽 대륙에 상륙했었다. 그러고도 욕심은 많아 가급적 각 국가별 베스트 코스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척에 깔린 주변 골프장들을 애써 외면하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명문 코스들을 찾아다니는 작업은 지나치게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고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첫날 랭킹 1위의 San Lorenzo GC에 이어 Vale do Lobo를 찾아갔다. Royal 코스와 Ocean 코스로 나뉘어진 36홀 Vale do Lobo는 각 코스가 3, 4위권에 랭크된 골프장이다. Vale do Lobo는 알가르베 리조트 개발 초기에 오픈한 골프장으로 1968년 영국의 헨리 코튼(Henry Cotton)이 쌀 경작지에 토목 공사를 하고 30만 그루의 나무를 식재해 아름다운 골프장으로 변모시켰다. 헨리 코튼이 설계한 홀을 기반으로 1997년 미국의 설계가 Rocky Roquemore가 부분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헨리 코튼의 영국식 홀과 새로운 미국식 홀이 공존하는 골프클럽이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에 위치한 Royal 코스에서는 아일랜드 홀에 가까운 9번 홀과 낭떠러지 그린의 16번 홀이 시그니쳐 홀로 꼽힌다. 특히 16번 홀(파3, 224yd)은 알가르베 골프의 상징과도 같은 홀이다.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건너 커다란 벙커가 지키고 있는 그린에 한 번에 안착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더욱이 맞바람이 불 때는 더욱 악명 높아진다.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샷을 경험할 수 있는 홀, 보기만 기록해도 당당하게 이 홀을 떠날 수 있다는 매니저의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맞바람을 의식해 두 클럽이나 크게 잡았던 동반자의 볼이 그린 왼쪽 끝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의식적으로 오른쪽을 겨냥했는데 내 볼은 턱없이 짧은 거리로 낭떠러지 행이 되고 말았다. 둘 다 양파를 기록한 스코어 카드를 들고 씁쓸히 홀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가르베를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지천에 널린 골프장들은 어딜 가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없는 최고의 코스들이었다. 결국 지브롤터를 포기하고 각종 브로셔에 등장하는 그림같은 코스들을 조금 더 경험하기로 했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