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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투쟁의 본거지서 15년 분규 무풍지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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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오른쪽에서 셋째)의 부인 박서진 변호사(가운데)가 선박의 명명식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독일 오펜사 측은 “최고 품질로 납기를 맞춰준 노조에 감사한다”며 오 위원장 가족을 명명식에 초청했다. [현대중공업 제공]

1987년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의 진원지. 90년대 골리앗크레인 농성. 87~94년 연평균 36일의 분규. 연평균 1940억원, 총 1조5000여억원의 매출손실. 176명 해고, 135명 구속. 94년까지 현대중공업 노사가 걸어온 성적표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투쟁적인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다.

당시 감옥에서 골리앗크레인 농성을 진두지휘했던 오종쇄 현 노조위원장은 “노동자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시기였다”며 “그러나 점차 노동운동에 이념이 개입되면서 변질되어 갔다”고 말했다.

이랬던 현대중공업이 지금은 한국형 노사 협력 모델의 상징이 됐다. 올해까지 15년 동안 분규 무풍지대다. 올해는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임금교섭을 회사에 일임했다. 회사는 고용을 보장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교섭 위임 결단에 따른 폭발력은 컸다. 미포조선·삼호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업계는 물론 울산지역의 대기업 노조들이 잇따라 임금을 동결하거나 교섭을 회사에 위임했다.

이기권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올 들어 울산지역 노사관계가 눈에 띄게 안정된 데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결단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07년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회사를 만든다’는 노사 공동선언을 했다. 전임 김성호 노조위원장과 현 오종쇄 위원장은 발주처에 납기일 준수와 최고 품질을 보장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수주활동을 벌였다. 2006년 12조5000여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19조9000여억원으로 뛰었다. 지난해 순이익은 2조2500여억원에 달했다.

노사는 지역사회에 이익을 배분했다. 대형 마트 때문에 재래시장이 힘겨워하자 울산 동구청이 운영하는 동구사랑상품권을 9억여원어치 사서 재래시장의 영세상인들을 도왔다. 전 직원이 사랑의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기업으로선 독특하게 경영사정을 지역주민에게 공개한다.

이 회사 최길선 사장은 “우리 노사는 파트너를 넘어 모두가 경영의 주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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